돈황본 육조단경 다시보기③

방앗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大師遂責惠能曰 汝是領南人 又是獦獠 若爲堪作佛
惠能答曰 人卽有南北 佛性即無南北 獦獠身與和尙
不同 佛姓有何差別
大師欲更共議, 見左右在傍邊 大師更不言 遂發遣惠能
令隨衆作務 時有一行者 遂差惠能於碓坊 踏碓
八个餘月

 

대사는 마침내 꾸짖어 혜능에게 말하였다. “너는 영남 사람이고 또한 오랑캐인데 어찌 견뎌서 부처를 짓겠느냐?” 혜능이 답하길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지만 부처의 성품인 즉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화상과 같지는 않겠으나 불성에 어찌 차별이 있겠습니까?” 대사는 계속 말하고 싶었지만 좌우 주변에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대사는 다시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혜능을 내보내어 대중을 따라 일을 하도록 시켰다. 그때 한 행자에게 시켜 혜능을 방앗간으로 보냈다. 8개월 정도 디딜방아를 찧었다.

혜능의 답변에서 핵심 키워드는 ‘作’자 이다. 혜능은 ‘불법을 일으킨다(:佛法作).’로 자신의 결기와 근기를 표출했고 홍인 대사는 ‘부처를 어찌 일으키겠느냐(:作佛)?’라고 되물었다. 일반적으로 불교 수행을 한다고 할 때 불법을 깨친다거나, 불도를 이룬다고 할 텐데, 혜능의 의외의 답변에 홍인 대사는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아마도 혜능의 남다른 법기(法器)를 보았을 것이나 아직 그의 정제되지 않은 교만심이 문제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왜 디딜방앗간이었을까? 모든 히스토리에는 상징성이 있다. 가르침 또한 비유와 상징을 통해 스스로를 돌이키게 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디딜 방아질을 하면서 혜능은 매일 무엇을 목도 했을까? 아마도 독자들은 이와 같은 의문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내용을 이해하기 바쁠 테니 말이다. 원문에 의하면 디딤질을 8개월 남짓했다고 한다. 디딤질은 중노동이기도 하지만 계속 밟는 동작이 반복되는 아주 따분한 일이다. 매일 땅을 향해 발판을 힘겹게 눌러야 하는 힘든 일이다. 매일 무엇을 누르고 억제했다는 말인가, 또한 발판의 건너편에서는 딛음의 반작용으로 연신 꾸벅이고 있는 방아의 머리(공이)를 보면서 혜능은 마음 안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만일 혜능의 마음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불만만 일으키고 있었다면 매 순간 자신 앞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디딜방아의 물리적 움직임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대상에 붙들리지 않고 그것을 통해 회광반조, 즉 자신에게로 돌이킬 수 있는 성정을 갖은 자는 바깥의 선지식이 필요치 않다. 속절없이 디딜방아를 밟으며 혜능은 다리의 고단함에 빠져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신분 차별에 대한 억울함과 일자무식의 열등감이 올라옴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과 동일시 되어 자기의 본성을 놓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매 순간 일어나는 분노의 감정을 굵은 다리로 밟아 제어하듯이 인욕의 힘을 키워 무의식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숙업까지 닦아냈을 것이다.

발판이 체(體)라면 그 힘의 반작용으로 고개를 숙이는 ‘공이(머리)’의 움직임은 용(用)임을 체득했을 것이다. 방아의 고개 숙임을 통해 하심(下心)을 배웠을 것이고 이런 체와 용의 작용은 안과 밖이 서로 즉(卽)해서 일시에 나타나는 현상이기에 여기서 연기(緣起)의 법칙을 깨우치지는 않았을까. 지나친 상상이라 할 수 있겠으나 사실 혜능이 홍인 대사의 문중에 들어가서 구체적으로 어떤 수행의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없다. 유일한 것이 방앗간에 8개월간 있었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도 숨어 있던 모양새였고, 6조로 부촉을 받은 후에도 긴 세월 은둔을 요구했다.

우리는 이 방앗간의 상징적 의미에 관심이 없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버린다. 마치 의례적인 일종의 행자 수습 기간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작금의 출가문화에서도 행자 기간은 이제 불필요한 과정으로 평가 절하시킨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행자 기간 동안 겪게 되는 많은 감정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느냐에 따라 앞으로 구도의 길에서 수없이 맞닥뜨릴 장애들을 극복해 낼 큰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혜능의 수행 이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저잣거리에서 금강경 소리 듣고 깨친 바가 있었고 밤에 오조로부터 금강경 법문 들은 것으로 깨달음이 완성됐다고 판단해야 한다. 깨달음이 그렇게 쉬운 것인가. 그렇기에 돈오(頓悟)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겠으나 너무 비현실적이다. 이처럼 수행경력 없이 한번 듣고 깨쳐서 선지식이 된 경우는 부처님 성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도교의 신비적 정서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한데, 혹시 작금의 한국불교 납자들도 이런 피상적인 내용에만 의존하여 알음아리의 일시적 번뜩임을 돈오로 착각하고 수행도 한방에 도를 깨치는 방법을 찾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五祖 忽於一日 喚門人盡來 門人集記 五祖日 吾向
汝說 世人生死事大 汝等門人 終日供養 只求福田
不求出離生死苦海 汝等自姓迷 福門何可救汝 汝
惣且歸房自看 有知惠者 自取本性般若之知 各作
一偈呈吾 吾看汝偈 若悟大意者 付汝衣法 禀偶六代 火急急

오조가 어느 날 문인들을 불러놓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길 “세인들에게는 생사 문제가 일대사라고 했다. 그런데 너희들은 종일토록 공양 올리고 내지 복을 구하기만 하고 생사고해를 벗어남을 구하지 않는다. 너희들 각자의 성품이 미혹한 데 어찌 복으로 너희들이 구제 되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살펴라. 알음아리와 슬기가 있는 자는 스스로에 의지하여 본성이 반야임을 알아 각자 한 가지씩 게송을 내게 보여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살펴서 만일 대의를 깨달은 자가 있으면 6대 조사로 의법을 부촉 할 것이니 화급히 서둘러라.”

門人得處分 却來各至自房 遞相謂言 我等不須呈心
用意作偈 將呈和尙 神秀上座是教授師 秀上座得法
後 自可於止 請不用作 諸人息心 盡不敢呈偈 時
大師堂前 有三間房廊 於此廊下供養 欲畫楞伽變 并
畫五祖大師傅授衣法 流行後代爲記 畫人盧玲看壁了 明日下手

문인들이 분부를 받들고 각각의 처소로 돌아가 각자의 방에서 서로 번갈아가며 말했다. ‘우리들은 수고로이 마음 써서 게를 지어 화상에게 보일 필요가 없다. 신수 상좌가 교수사이니 그가 법을 얻은 후에 자기가 우리들에게 이를 것이다.’ 모든 사람은 게송을 짓지 않고 마음 편히 갖기를 권하니 구태여 게송을 들어내는 이가 없었다. 그 당시에 대사의 처소 앞으로는 세 칸의 회랑이 있었는데 이 회랑 밑에선 공양을 올리고 벽에는 능가변1)과 오조 대사까지 의법이 전해지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후대에 기록으로 알리고자 했다. 화공 노령이 벽들을 잘 살피고 다음 날에 착수하기로 했다.

혜능의 등장은 신수와의 게송 경쟁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다. 사실 신수와 혜능을 객관적인 측면으로 비교하자면 혜능은 여러모로 상대가 되지 않는 적수이다. 그런데 이 둘의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단경은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 초조 달마대사는 《능가경》을 가지고 왔다. 여래장 사상이다. 중국 불교의 근간은 여래장 사상을 핵심으로 펼쳐졌다. 대승불교를 공, 반야 등의 형의상학적인 측면으로 치우쳐 받아들이게 되면 다시 교학 불교로 빠지게 되어 부처님의 대의를 놓치게 된다. 어찌 보면 혜능의 육조단경은 교학을 다소 희생시키더라도 마음을 통해 곧바로 불도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불교신문 2022년 신춘문예 평론부문 입상자

【각주】
 1) 능가경(楞伽經)변상도(變相圖)를 말한다.-부처님이 능가성(城)에서 설법하신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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