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자비구름의 덕운 스님

덕운 스님이 그들을 오라고 손짓하자 선재와 보리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하늘 높이 떠있던 구름들이 몽실몽실 스님 곁으로 몰려왔다. 그중 가장 높은 곳에서 멀리 볼 수 있는 새털구름과 비늘구름, 많은 친구를 몰고 다니는 양떼구름, 저녁 어스름에 햇님 주위를 돌면서 화려한 황금빛과 은은한 향기처럼 부드러운 은회색빛의 두루말이구름, 아련하게 푸르고 붉은 빛을 무지개처럼 겹겹이 층을 내는 채운구름도 있었다. 또 아무리 먹구름이 뒤덮어도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새하얀 진주구름이 덕운 스님의 얼굴을 밝게 비추어 주었다.
“저 스님은 좋은 일을 아주 많이 해서 여기 즐거움이 가득한 승락국으로 오셨대.”
“무슨 좋은 일?”
양떼구름이 말하자 채운구름이 물었다.
“아, 아... 강화섬 집 이야기구나!”
새털구름이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하늘을 새털처럼 가볍게 한번 날았다.
“옛날에 스님이 늙은 아버지와 함께 강화섬에 삼년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집을 지었는데, 욕심 많은 형이 다 지어논 집을 빼앗아 버렸어. 아버지는 슬퍼한 나머지 병들어 죽게 되자, 아버지 무덤가에서 어찌나 우는 지 지나가는 새들도, 곁에 있는 나무들도 스님의 통곡 소리에 같이 울었다니까... 뿐만 아니라 형한테 쫓겨나서 이 산 저 산 옮겨 다니며 움막을 짓고 살았지. 하지만 못된 형의 행동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산신할아버지와 산신할머니가 태풍친구와 천둥과 번개들에게 부탁해서 살고 있던 집을 다 부셔버렸어. 형은 또 태풍에 날아가면서 바위에 부딪쳐 앞이 보이지 않게 되고 팔 다리도 똑 부러진 거야, 또 강화섬 일대가 모두 쑥대밭이 되었고….”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강화섬은 왜 쑥대밭이 되었대?”
“동네사람들이 형이 잘못하는 짓을 보고만 있었다고 괘씸해서 그랬대….”
“하지만 덕운스님은 장님이 된 형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움막으로 데려와 극진히 돌보아 주었대. 그리고 태풍으로 어렵게 된 강화섬 사람들도 정성껏 도와줘서, 사람들이 욕심 많고 못된 형을 버리지 않고 돌봐주는 것을 보고 자비 공덕이 구름처럼 많다고 해서 덕운 이라 지었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채운 구름이 화르르 흥분해서 물었다.
“내가 다 봤잖아. 우리 새털구름과 비늘구름은 높은 데서 이리저리 다니며 다 볼 수 있거든.”
“맞아. 내 친구들도 스님이 사람들 도와주는 모습을 종종 보았대.”
양떼구름이 친구들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하, 그래서 덕운 스님 주변에 구름이 많구나. 묘봉산은 산꼭대기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복을 주고 자비심으로 어둡고 슬픈 그림자를 덮어주는 곳인데 스님은 공덕과 자비를 베풀려고 여기저기 산들을 돌아다니셨구나.”
“그래서 구름을 타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묘봉산을 떠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구먼.”
두루말이 구름이 허리를 탁 치며 은회색 구름들을 감아올렸다.
구름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하는 것을 듣던 선재동자는 그 앞으로 나아가 엎드려 스님 발에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뒤 말하였다.
“친절하신 덕운스님이시여, 저는 선재동자고 이 아이는 보리라고 하는데 지난 삼 년 동안 가족들을 위해 화엄경 약찬게를 열심히 염송하였답니다. 부처님께서 저와 보리가 한없는 깨달음을 성취하여 자비로운 마음으로 많은 사람에게 자비행을 베풀라 하셨는데, 제일 선지식께서 어떤 마음이 들면 그렇게 되는지 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덕운 스님이 보리의 머리에 손을 얹고
“착하고 착한 보리야, 늘 염불했더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욕심이 사라졌어”
보리가 고개를 들자 구름들이 움직여

보리는 갑자기 구름이 모여든 것과 스님이 구름을 타고 다니는 게 신기하고 이상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선재동자가 절하는 모습에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같이 절을 하였다.
덕운 스님이 보리의 머리에 손을 얹어주시며 따뜻하고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착하고 착한 보리야, 나는 제일 선지식으로 덕운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가피로 모든 장애에 걸림이 없어 눈이 맑고 청정해져서 지혜의 빛이 밝게 빛나게 되었어. 그 이유는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늘 부처님을 공경하고 봉양하였으며 보리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칭명염불 하였단다. 아버지와 집을 지을 때도 늘 염불하였더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욕심이 사라졌어. 또한 모두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혜안이 생기셔서 나쁜 짓을 한 사람의 악행들도 덮어주게 되었지.”
보리는 합장한 채 고개를 숙이고 생각했다. 저 스님, 사람 맞아? 나쁜 사람이 악행을 저질렀으면 벌을 줘야지, 이상하네... 아마 극락에서 온 천상선녀인가? 그러기에는 옷이 너무 꾀죄죄한데…. 천상선녀는 옷이 새하얗고 반짝거릴텐데... 코로나 때문에 극락 세탁소도 문을 닫았나? 근데 극락세탁소가 문 열기 전에 옷을 좀 빨아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보리가 주먹을 불끈 쥐고 천천히 고개를 든 순간, 구름들이 재빨리 움직이면서 따뜻한 비구름을 만들더니 덕운 스님한테 뿌리기 시작했다. 마치 극락세탁소의 체인점처럼 자연스러웠다. 옷이 점점 깨끗해지자 새털구름이 랄랄라 노래를 부르며 묘봉산 꼭대기로 올라가고 양떼구름들도 들판을 달리듯 우르르 모여서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갔다. 채운 구름과 두루마리 구름은 아직 해가 지지 않아 그 옆을 빙글빙글 돌며 스님의 옷들을 깨끗하게 말려주었다. 요즘 티브이에서 광고하는 건조기보다 더 빠르게 뽀송해지자 보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역시 좋은 세상이구나.
구름 위의 극락!
“아이고! 금방 옷이 깨끗해졌네요. 역시 선지식입니다요. 그럼, 저희도 매일 매일 염불만 열심히 염송하면 될까요? 노는 입에 염불하라는 말도 있잖아요?”
선재동자의 말에 덕운 스님이 하하하... 웃었다.
“그렇지, 노는 입에 염불이라... 근데 놀면서 하면 안돼, 관상 염불을 마음으로 하면서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잠도 자야 하니까…. 염불도 자기의 업에 따라 하는 거예요. 부처님이 앉으신 분타리카 연꽃의 법계에 널리 퍼져 나가야 하는 게 염불이고 그냥 노는 입에 염불은 간절함과 정성이 없는 거지, 마치 생각없이 허공에 대고 하는 거나 똑같은 거야. 그래서 나도 걱정이 있어, 부처님이 소유하신 몸에 자비구름법계와 염불로 허공계를 꾸미려면 어떤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지 선재동자가 여기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 해운 스님에게 물어봐 주겠나?”
“거기 가서 무엇을 여쭤봐야 하는 겁니까?”
“아주 크고 넓은 자비의 바다에 들어가 나쁜 사람들을 좋은 사람으로 바꾸는 것, 즉 악연을 선연으로 바꾸는 해탈의 바다에 가기위해 어떻게하면 측은지심으로 크고 자비로운 힘을 키울 수 있는지 방법을 물어 보아라”
선재는 보리와 같이 덕운 스님께 합장 하고 우러러본 뒤 남쪽으로 향했다.
남쪽의 남쪽 해운국의 바다는 푸른 하늘만큼 넓고 광대하여 낮에는 햇빛이 물결 속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거리며 밤에는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헤아릴 수 없는 별빛 파도로 장관을 이루었다. 또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모두 받아들여 큰 바다를 이루지만 빗물로 인해 바다물이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아 마치 엄마의 품속같이 넓고 깊은 바다에는 상어들이 많이 살았다. 얼마를 갔을까... 푸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부둣가에 사람들이 이리저리 우다다다 뛰어다녔다.
“야아! 돔배기 많이 잡았다. 오늘은 무척 많이 걸렸네.”
“우와아. 이건 대풍인지... 댓빵인지 무조건 좋다야!” (다음호 계속)
 

채운구름 : 태양부근을 지나는 구름이 붉고 푸르게 무지개처럼 번갈이 채색 되어있는 구름
승락국 : 신심이 높아 즐거움이 많은 나라
자비행 : 자비로운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
가피 : 부처님이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보살피고 지켜주는 것
봉양 : 받들어 모심
악행 : 나쁜 일을 저지르는 행동
측은지심 : 불쌍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
: 몸과 입으로 짓는 착한 행동과 나쁜 행동
분타리카 연꽃 : 하얀 연꽃, 백연화 라고도 하고 우담바라 꽃이라 함.
구름법계 : 구름처럼 우주의 모든 사물이 부처님의 법안에 있는 세계
해탈 : 걱정, 근심, 번뇌, 욕심을 다 버리고 편안한 상태
허공계 : 모든 우주의 세계
대자비 : 아주 크고 많은 자비를 베푸는 것
돔배기 : 돔발상어의 다른 말 (주로 경상도에서 많이 씀, 산적으로 제사음식에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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