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선재동자와 보리살타

 

보리가 길가 양지바른 곳, 와글와글 소리가 나는 데로 가까이 갈수록 그것은 개구리가 아닌, 사람이 내는 소리였다. 머리카락을 찹쌀 도넛같이 동그랗게 돌돌 말아서 염소 뿔처럼 머리 꼭대기에 올렸는 데다가, 이마는 툭 튀어나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으며 얼굴은 서양 인형같이 잘생긴 오빠였다. 그리고 합장한 채 중얼중얼 머라 하는데 너무 빨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지만 개구리들처럼 와글와글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오 옹..., 앗싸라비야... 훙캉 쓰바….”
보리는 어느새 그 앞에 섰다. 선재동자는 햇빛을 가로막는 작은 아이를 쳐다보았다.
“너, 누구야?”
“나? 보리….”
보리는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떨군다.
“너 화엄경 약찬게 알아?”
보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인다. 선재가 손뼉을 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부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네. ㅋㅋㅋ ㅋㅋㅋㅋ
“우와아! 너 화엄경 약찬 게 외워봐.”
얼떨결에 보리는 평소 하던대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염송하기 시작했다. ‘대방광불 화엄경 용수보살 약찬게, 나무 화장세계 해 비로자나 진법신, 현재 설법 노사나 석가모니 제 여래….’
“인제 그만…. 너의 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비로자나 부처님의 바다에 보배 흰 연꽃이 가득 찬 신비로운 광경을 네게 보여주래.”
“정말? 그러면 보현, 문수 대보살님도 만나?”
“어떻게 알았어? 근데 왜 반말을 해? ”
“오빠가 먼저 반말했잖아? 그리고 약찬게에 나오잖아, 대자재왕 불가설 보현문수 대보살, 법혜공덕 금강당 금강장급 금강혜, 광염당급 수미당 대덕성문 사리자, 급여비구 해각등 우바새장 우바이, 선재 동자 동남녀….”
선재는 정말 노래를 부르듯 몸을 살짝살짝 흔들며 진심으로 기도하는 보리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문수보살님이 이래서 혜안으로 보라 하셨구나…. 선재는 저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니 기분이 좋았다.
“근데, 누구랑 가?”
“네가 금방 말했잖아, 맨 마지막에….”
“마지막? 동남녀, 아이들?”
선재가 보리 옆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귀에다 대고 ‘나, 오빠. 선재동자!’ 하고 소리를 질렀다. 보리는 깜짝 놀라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다시 얼굴이 빨개진다. 선재는 보리에게 일일이 다 설명해줄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는 육천 명의 스님과 이천 명의 불교 신도들과 어린이들이 보이지 않게 따라와 있었다. (비구, 육천. 우바새, 오백. 우바이 오백. 동남녀, 각각 오백)
“언제 가는데?”
“지금 가야 해, 너 찾느라 시간을 많이 뺏겼어.”
“엄마랑 아기랑 아빠한테 다녀온다고 말해야 하는데….”
“부모님은 모르시게 너의 꿈속으로 내가 들어갈 거야, 그러니 얼른 집에 가서 자.”

선지식 덕운 비구가 산꼭대기서
염불삼매에 빠져있는 그림 찾아
처음 가는 길인데 익숙하고 빨라
모두 손에 염주 쥐고 칭명염불

보리는 침대 머리맡에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놓고 엄마와 아기, 아빠에게
뽀뽀를 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살짝 들 무렵, 보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제 언제 올지 몰라…. 사랑하는 내 가족들…. 건강하시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꿈속에서라도 제가 지켜드릴게요….
선재는 보리가 꾸물거리는 게 몹시 불안해졌다. 혹시 안가겠다면 어떡하나 싶었으나
문수보살 님이 이미 보리의 마음을 꽉 잡아놓은 상태여서 걱정할 필요가 없어도 보리가 잠들 때 흘린 눈물이 마음에 걸렸다.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꿈속으로 들어간 선재는 ‘지남도’를 펴들고 승락국을 찾았다. 승락국에서 묘봉산이 어디 있는지, 또 ‘53선지식 중 제1 초발심주의 선지식’ 덕운비구가 산꼭대기에서 염불 삼매에 빠져있는 그림을 찾아냈다. 처음 가는 길인데 왠지 익숙하고 꿈속에서의 길은 무척 빨랐다. 왜냐하면 날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승락국 사람들은 모두 손에 염주를 쥐고 다니며 아이들과 어른들은 칭명 염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눈을 감고 마음으로 관상 염불을 하고 있었다. 보리는 사람들이눈을 감고 염주를 돌리면서 길을 걷는데도 넘어지지 않는게 신기했다.
“염불 삼매에 빠지면 부처님을 만날 수 있어, 넘어지지도 않고 혹시 넘어져도 아프 지 않아….”
선재가 보리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설명해주며 승락국 사람들에게 덕운스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물어보았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 스님은요, 묘봉산 꼭대기에 살고 있는데요. 과거에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고, 미래에도 그곳을 떠나지 않을 거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묘봉산 꼭대기 그 어디에도 덕운스님은 계시지 않았다. 산골짜기와 동굴바위, 나무 숲속까지 사방팔방을 찾아 다녀도 보이지 않아 선재 동자는 보리와 함께 일주일 만에 찾는 것을 포기하고 산에서 내려오기로 하였다.
“나참, 도대체 어디에 계신 거야. 사람들이 다 꼭대기에 계신다고 했는데….”
“속상할 때는 눈을 감고 기도해야지, 오빠 아까 뭐라고 했잖아…. 오 옹... 앗싸라비야, 훙 캉 쓰바….”
“내가 언제 그랬어?”
“그렇게 들었는데…. 오 옹 앗싸라비야, 훙캄이던가….”
“아하하! 법신진언, 옴 아비라 훔캄 스바하. 근데 머, 오 옹 앗 싸라비야…. 킥킥 킥….”
“그게 진언이었어? 법신 진언은 또 뭐야? 처음에 들었을 때는 개구리 우는 소리처럼
와글와글 거리 덴데….”
선재는 보리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살짝 치밀었던 짜증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보리가 오빠라고 불러줄 때 마다 심쿵! 마음이 울렸다.
“그건 비로자나 부처님을 칭송하는 진언이야. 진언을 천천히 해야 하는데 49번씩 하려니까 나도 모르게 빨라져서 그래.”
보리는 진언을 천천히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옴, 아비라, 훔캄, 스바하. 옴, 아비라, 훔캄, 스바하”
선재는 입을 야무지게 오물었다 폈다가 하면서 열심히 따라 하는 보리가 귀여워 손가락으로 보리 이마를 살짝 튕겼다. 그러자 보리가 몸을 비틀며 으음 신음 소리를 낸다.
아이쿠! 애는 지금 꿈을 꾸는 상태지. 선재가 깜짝 놀라 튕긴 이마를 살살 쓰다듬으며 보리를 토닥여 준다. 그 모습을 근처 낮은 산 봉우리에서 ‘제1 선지식’ 덕운 스님이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불교신문 2022 신춘문예 동화 입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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