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준 성신여대 명예교수.
방영준 성신여대 명예교수.

 

지구별에 사는 인간 삶의 도덕적 위기에 대한 한탄의 소리는 귀에 면역이 될 정도로 들어왔다. 그래도 많은 사람은 중생이 사는 세상이 그러려니 하면서 스스로 위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보기도, 듣기도, 말하기도 끔찍한 일들을 겪으면서 그동안의 위안이 얼마나 안이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너나 할 것 없이 도덕성 회복의 목청을 돋우고 있으나 마치 ‘찢어진 거미줄’을 손가락으로 수리하려는 느낌이 든다.

현대 사회에서 도덕성 회복의 제일 큰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교육 공동체’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교육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다. 학교는 입시학원으로 변했고, 스승으로 추앙받았던 교사는 이제 ‘갑질’의 대상이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교사들은 ‘왕자의 DNA’을 가진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 입국’이라는 명성을 가진 한국의 교육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붓다 가르침의 핵심인 ‘연기법’이 번개처럼 떠 오른다. 아상(我相)에 사로잡혀 구분심을 갖고 탐심에 빠지니 이런 공동체 붕괴 현상이 일어난 것이리라. 연기법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시방 삼세 존재들의 상호적인 관계에서 나온 선물이다. 따라서 연기에 대한 깨달음은 자신의 존재와 삶이 우주적 연쇄의 존재가 주는 선물임을 깨닫고 다른 존재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법에서 자연스럽게 자비가 나오는 것이다. 자비의 원천인 연기론에 바탕을 둔 윤리를 ‘상호 윤리Mutual Ethics’라고 표현한다. 연기론에 바탕을 둔 상호 윤리는 오늘날 서구 윤리학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상호 윤리의 출발은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의존적 상호 발생’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윤리는 오늘날 지구별과 지구촌 사람들이 겪는 위기와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가치로서 등장하고 있다. 연기론에 바탕을 둔 윤리관이 서구 윤리학계를 풍미하고 있는 현실에 새삼 붓다 가르침의 위대성에 가슴이 찡하다.

이렇게 불교는 연기론에 바탕을 둔 상호 윤리의 귀중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상호 윤리는 바로 자비 윤리이다. 달라이 라마 존자는 저서 <종교를 넘어Beyond Religion>에서 종교를 바탕으로 한 도덕을 넘어, 현실 세계에 바탕을 둔 현세적 도덕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비를 현세적 보편 도덕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 사회의 교육 공동체 붕괴를 보면서 필자는 윤리학자로서 상호윤리적 성격을 가진 자비 윤리를 어떻게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에 고뇌하게 된다. 붓다의 깨달음은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붓다의 가르침, 즉 불교는 중생에 대한 자비에서 출발한 것이다. 자비 없는 불교는 없다. 이제 자비를 단순히 개인의 덕목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개선과 사회 정의를 위한 사회 윤리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바로 바람직한 공업(共業)을 창조하는데 자비 윤리의 정립 과제가 있다.

사회의 교육 공동체 붕괴의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일 큰 원인은 연기론에 바탕을 둔 자비 윤리의 결핍에 있다. 불교는 자비의 큰 우물을 가지고 있다. 이 우물을 어떻게 메마른 땅에 보내 세상의 행복에 이바지할 것인가? 시대 변화에 따라 교육 공동체의 성격도 다양하게 변할 것이다. 연기는 변화의 지혜이다. 그래서 자비 윤리의 정립과 실천에 많은 지혜와 성찰이 필요하다. 윤리와 도덕 교육의 역사를 보면 근세에 이르기까지 가정과 종교가 그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과 종교는 도덕적 사회화 기능에 많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종교의 벽을 넘는 상호윤리적 성격을 가진 자비라는 보편적 덕목을 가지고 있다. 찢어진 거미줄을 복원하는 길은 바로 자비 윤리의 실천에 있다. 이를 어쩌랴. 하화중생의 과제가 큰 벽으로 불자에게 다가온다.

-방영준/성신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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