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준 작가.
이석준 작가.

 

8월 중순의 태양이 숨이 턱 막히게 작열하던 어느 평일 오후였다. 땅에서는 숨 가쁘게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사람들의 표정들은 한없이 지쳐가고 있었다. 잠시 후 오전부터 에어컨 가동을 하여 시원해진 사무실 문을 누군가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 오늘은 평일이라 포교하는 우리 사무실을 찾을 사람이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몇 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은 지인이 서 있었다. 지금은 같은 포교의 길을 가지는 않지만 반가운 마음에 안으로 맞고 시원한 음료를 드리며 근황을 듣고자 했다. 사업의 실패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이 분은 이제는 고난의 세월을 극복한 듯 수많은 이야기의 보따리를 서서히 풀어놓고 있었다.

어느덧 한 시간이나 흘렀지만 아직 이 분은 자신의 일들만 일방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나의 마음속에는 반가움이 지나고 안타까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으음, 이제는 나의 안부를 묻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텐데.........’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이 분의 일방통행의 말들은 30분이 더 지났고, 결국 반가움의 만남은 아쉬움이 가득한 자리로 변하고 있었다.

대화(對話)는 상대가 있음을 전제로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인데 우리는 살면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자주 보곤 한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수많은 말들이 일방통행의 길을 따라 전해지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의 귀는 닫은 채 자신의 세계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대인 정신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는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이 있다.

‘ 인간의 입은 하나 귀는 둘이다.’

이것은 자신의 말은 꼭 필요한 것만 하고 상대의 이야기는 두 배로 잘 들어서 서로 소통을 잘 하고 소중한 화합을 이루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명언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상대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두 귀는 막고서 자신의 입으로는 상대를 향해 일방통행의 말들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대다수여서 화합을 이루어 가는 데 크나 큰 방해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우리가 자주 듣고 있는 십악(十惡) 중죄 가운데 말로써 짓는 악업이 거짓말, 꾸밈말, 이간질, 험한 말 등 네 가지나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하나의 입으로는 말을 아끼는 것이 불자로서 악업을 짓지 않는 신행방법일 것이요, 두 개의 귀로는 상대의 소중한 이야기를 들어주어 선업을 쌓는 수행공덕이 될 것이다.

환한 표정으로 사거리의 건널목을 오고가듯, 진정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배려하는 성숙한 대화의 자세는 바로 우리 불자들이 먼저 몸에 익히고 실천하는 상생(相生)의 모습이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소설가

필명: 이행, 법명: 송운. 격동의 시기인 1980년대 중반 성균관대 국문과에 다녔으며, 그 후로 30년 동안 역사와 문화, 그리고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수학했다. 2022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즈라체티카』로 입상하며 늦깍이 등단했다. 현재 경기북부 대표도량인 봉선사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우리 고유의 역사의식과 정신문화를 담고자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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