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부터 2014년까지 담은 월운 스님 자초연기(自抄年紀)

격동의 세월 담담하게 기록…재가제자 신규탁 교수가 출간

못다 갚을 은혜; 월운당 도중사

신규탁 엮음, 혜성 감수

도서출판 중도

25,000원

 

 

 

 

 

 

“자초연기(自抄年紀)라 함은 글자 그대로 나의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며 기억나는 일들을 연도순에 따라 적은 일종의 회고록(回顧錄)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처리하며 살았는가를 되돌아보기 위함이지 결코 다른 뜻은 없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긴요치 않은 일이나 남 보기에 좀 수치스러운 면도 가리지 않고, 있었던 일 그대로 적었고, 남의 일도 보고 느낀 그대로 그 당시의 소감을 적었을 뿐 다른 감정을 개입시키지는 않았다.”

책 앞에 실린 월운 스님의 자서(自序) 첫 부분이다. 스님의 이야기는 고향인 경기도 장단군 진동면 용산리 버드능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그 시절, 유달리 가난한 집안의 아버지는 천자문을 구해다 다섯 살 맏아들을 가르치고, 서당에도 보냈다. 훗날 대강백이 된 월운 스님의 학승으로서의 씨앗은 그때 심어진 것이다.

스님은 18세까지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1949년(21세) 출가해서 운허(1892~1980) 스님의 제자로 경전을 공부하던 때, 10여 년간 공부를 마치고 1957년 운허 스님의 대를 물려 통도사 강사로 학인들을 교육하던 시절, 1964년 동국역경원이 설립되자 사부 운허 스님을 도와 최연소 역경사로 《한글대장경》 번역 작업에 착수해 2001년 완간할 때까지 자신과 당시의 주변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기록했다.

스님이 살았던 시기엔 국가적으로는 8.15해방에 이은 한반도 분단과 정부수립, 6.25전쟁, 농지개혁, 5.16군사정변 등이, 불교 교단 내부로는 50년대 이래 비구-대처 분규, 80년의 10.27법난, 94년 개혁종단 출범 등의 큰 사안들이 발생했다. 스님은 그런 긴 세월의 상황을 겪으면서 적어둔 오래된 일기를 토대로 2010년대 당시의 시점에서 담담하게 기술했다.

2023년 5월 25일 서울 수국사 경내 월초화상 공덕비 앞에서 찍은 월운 스님의 마지막 사진.
2023년 5월 25일 서울 수국사 경내 월초화상 공덕비 앞에서 찍은 월운 스님의 마지막 사진.

 

이 회고록에는 6.26전쟁 통에 전소된 남양주 봉선사의 복원에 얽힌 무수한 사연들이 적혀있다. 한국불교의 근대교육과 관련해 홍월초 스님과, 월초의 손자 제자 운허(이학수)와 태허(김성숙)의 독립운동과 이순재 스님의 항일재판기록 등에 관한 생생한 기록은 당시 봉선사 스님들의 시대정신을 읽게 해주는 충실한 자료다.

재가불자를 위한 포교 전략으로 세운 ‘삼화행도’ 이론을 비롯해, 출가불자들의 전문 교육을 위한 강원(홍법강원, 능엄학림)의 운영과 배출 제자들 이야기, ‘불경서당’을 개원해 뒷날 대학교수가 된 이들을 길러내던 이야기, ‘통신강원’이라는 이름으로 카세트 녹음테이프 약 4,000개를 녹음하던 이야기 등등 교육에 관한 기록은 참으로 장엄하다.

월운 스님은 이 원고를 2010년부터 쓰기 시작해 80개 항으로 나누어 2014년 2월에 완성한 뒤, 연세대 철학과 신규탁 교수에게 건네주며 사후 출간을 당부했다. 월운 스님은 원래 자신의 원고를 ‘김월운의 회고담 자초연기’로 이름 붙였다. 대학 시절인 1970년대부터 월운 스님 앞에 경전을 펼친 인연이 있는 신 교수가 책을 엮으면서 《못다 갚을 은혜; 월운당(月雲堂) 도중사(途中事)》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펴낸 것이다.

신 교수는 5년 전 월운 스님의 90회 생신을 기념해 《월운당(月雲堂) 가리사(家裏事); 화엄종주 월운당 해룡 강백 문집》(조계종출판사, 2019, A4 총848쪽)을 헌정한 바 있다. ‘가리사(家裏事)’라는 용어는 선어록에 많이 쓰이는데, 불도를 닦는 수행자 내면의 체험에 관한 일이다. ‘도중사(途中事)’는 수행자로 살아오는 과정에서 겪은 사건이라는 뜻이다. 두 책 모두 훗날의 학자들이 월운 스님을 연구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다.

-최승천 기자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