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겨울 육군훈련소에서의 기본 훈련을 마치고 군종병 보수교육을 위해 열차를 타고 전방사단으로 이동 중, 의정부역에 정차했을 때였다. 차창 밖에서 어린아이들의 외침이 들려 왔다. “군인 아저씨 건빵 좀 줘요!”

이 모습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 직접 겪었거나 보았던 장면 중 하나이다. 6.25전쟁 이후 세계의 많은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아 폐허가 된 전쟁의 상처를 치료한 우리나라는 전 국민의 기적과도 같은 노력 끝에 이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이와 함께 지난 2010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 원조위원회 회원국이 되었다. 이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세계 최초의 사건이라고 한다.

2009년 총무원 소임을 마치면서 함께 근무했던 부국장 스님들과 라오스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국제구호단체를 설립하자는데 뜻을 모은 것이 현재의 외교부 소관 <사단법인 나누우리>이다.

2010년 3월 12명의 스님들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100여명의 회원으로 창립법회를 마쳤다. 그리고 첫 사업으로 라오스 루앙프라방 인근의 벤마우스 초등학교에 교사를 건립해 주었다. 이듬해인 2011년 라오스에서 캄보디아로 옮겨 본격적인 어린이 구호활동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것이 식수정수시설 건립사업이었다. 구호대상 국가를 캄보디아로 옮기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다름 아닌 우리의 부모님들이 6.25전쟁으로 먹을거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근근이 끼니를 이어갈 때 쌀과 구호금을 무상으로 지원해준 고마운 나라가 캄보디아였기 때문이다. 소위 ‘알랑미’라고 일컫는 쌀이 그 당시 캄보디아에서 구호품으로 보내준 쌀이다. 그 쌀을 먹고 힘을 모아 지금의 대한민국을 세계의 으뜸 국가로 이룩하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어려웠던 시절 도움의 손길을 보내준 캄보디아 아이들을 위한 구호활동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2011년 당시 캄보디아 국민의 평균 수명이 60세라 하였다. 짧은 수명의 원인을 조사해 보니 열악한 환경 속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한 수인성 전염병이 그 원인이었다. 이에 아이들에게라도 깨끗한 물을 만들어 주려 식수정수시설 건립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해 6월 캄보디아 시엠립 쁘레이톰 초등학교의 식수정수시설 준공을 시작으로 2023년 현재까지 10개소의 초등학교에 식수정수시설을 만들어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해 주고 있다.

나누우리가 건립한 식수시설은 단순한 우물이 아닌 지하 100m 이상의 관정공사를 통해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3개의 물탱크를 거쳐 여과필터 등의 기계장치를 통과한 후 수질검사까지 마친 깨끗한 물이다. 특히 현지인을 고용하여 매월 2차례 정기적인 식수대 관리를 해오고 있으며, 매년 공사감독 인력을 현지에 파견하여 제대로 된 식수시설을 건립해 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경상남도로부터 우수 해외구호사업에 선정되어 보조금을 받아 사업을 2배로 확대 진행하였다.

매년 가을이면 이사 스님들을 비롯, 회원들이 직접 캄보디아로 건너가 식수시설 준공행사와 함께 교실 페인팅, 책걸상 보수, 교실 선풍기 설치, 칠판 교체, 통학용 자전거 나눔, 슬리퍼 나눔, 학용품 및 체육용품, 음향시설 보급, 구충제 먹이기, 백미 전달 등 다양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금년에도 시엠립 쩐라옹 초등학교 식수시설 공사가 이미 진행되고 있어 가을에 준공행사와 각종 봉사활동을 가질 예정이다.

캄보디아에서의 구호활동도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캄보디아도 다소 더디지만 변모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이에 따라 나누우리의 해외 구호사업 형태도 달라져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에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나누우리의 구호활동은 캄보디아나 미얀마 등 해외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국내 긴급재난에도 꾸준히 자비의 손길을 내밀어왔다.

애써 모은 재산을 남에게 성큼 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십여 년 동안 끊임없이 매월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우리 종도를 비롯한 300여 명의 나누우리 회원, 17분의 이사 스님들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는 문명 속에서 가난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 생각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내미는 자비의 손길은 넘침이 없다. 이 손길은 내세울 것도 또 자랑거리도 결코 아니다. 그저 나누어 줄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나누우리 운영이사ㆍ통영 보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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