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재동자와 보리살타

 

불기 2567년,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신을 맞이하여 인도의 기원정사에 비로자나 부처님과 노사나 부처님, 전법륜 왕, 문수보살, 보현보살, 사리자불이 탄신을 축하하려 모여 앉았다. 모두 유명한 부처님과 보살님인지라 얼굴은 아주 맑고 깨끗하였으며,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들도 정겹고 따뜻하였다. 그때 우당탕퉁탕 문을 박차고 용수보살이 케이크 상자를 들고 뛰어 들어왔다.
“어이, 친구…. 천천히 오시게나. 잘못하면 넘어지십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빵 가게에서 초가 2,567개는 없다고 해서 그냥 큰 걸로 세 개 얻어왔습니다요.”
“왜 하필 세 개인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활짝 웃으시며 물어보셨다. 짙은 송충이 눈썹에 코 밑에는 일자 수염, 양쪽 입꼬리 부근에는 팔자수염이 멋들어지게 꼬여있는 용수보살은 용궁을 마음대로 들락거리더니 용왕님을 닮아 기운이 펄펄 넘친다.
“아, 그게요. 법신, 보신, 화신으로다가 딱 세 개….”
“오, 그렇군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답례로 미간에서 흰털을 하나 뽑으시더니 에메랄드빛 푸른 보석처럼 광명을 비추시자 모두가 환희심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리고는 푸른 광명의 끝자락에 아주 슬픈 표정으로 기도하고 있는 소녀를 보여 주셨다.
“저 아이는 누구입니까?”
문수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물었다.
“저 아이는 동방의 나라에서 부모님과 갓 태어난 동생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네. 내가 지난 삼 년 동안 지켜 보았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화엄경 약찬게’를 하고 있었네.”
“엣! 화엄경 약찬게는 내가 용궁에서 화엄경을 얻어다가 짧게 줄여 놓은 건데….”
용수보살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노란 젤리로 뒤덮은 망고 케이크를 덥석 집어 먹는다. 옆에 앉아 있던 보현보살이 눈으로 웃어주며 케이크가 묻은 손가락을 살며시 잡아 물수건으로 닦아 준다. 보현보살은 보현행원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약찬게는 스님들이랑 어른들도 어려워하는데, 아이가 어쩐 일로 하고 있을까요?”
“에헴, 약찬게는 화엄경 240만 자를 4.3조의 110구절을 770자로 만들어 외우기 쉽게 가락을 넣은 겁니다요.”
“용수보살님의 말이 맞아요. 저 아이는 보리라는 이름을 가진 아인데, 지난 삼 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어머니는 아기가 생기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화엄경 약찬게를 노래처럼 불렀다고 해요. 그러면 신중님들이 춤을 추시는 것 같다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빙그레 웃으시자 문수보살이 뜻을 알아차려 무릎을 굽혀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를 돈 뒤 석가모니 부처님 곁으로 나섰다.
“선재동자를 불러올까요? ”
석가모니 부처님은 말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떡인다. 선재동자는 이미 화엄경 약찬게에 나오는 ‘53 선지식’을 다 만났으며 마지막 보현보살님의 보현행원을 다 이룬 동자이다.
며칠 뒤, 문수보살은 지혜와 신통력 제일인 사리자와 함께 선재동자의 고향 복성마을을 찾아왔다. 선재는 예전에 부처님이 오셔서 법문을 하시던 사라 나무 숲속에 있는 커다란 왕탑을 청소하고 있었다. 문수보살님께 무릎을 굽혀 절을 한뒤 오른쪽으로 세 바퀴를 돌고 그 옆에 앉았다.

삽화=서연진
삽화=서연진

 

“여전히 착하고 착하구나, 선재야. 오늘은 부처님 심부름을 왔다. 부처님께서 동방의 나라에 사는 보리를 데리고 오라고 하시는구나.”
“왜요?”
“그 아이는 ‘화엄경 약찬게’의 뜻도 모르면서 삼 년 동안 열심히 염송하며 기도했다고 한다.”
“나이가 어린데도 약찬게를 한다구요 ?”
“그냥 노래처럼 부르기 좋아서 했대.”
“그럼 당연히 얼굴도 예쁘겠죠?”
“음…. 마음의 눈…. 즉, 혜안으로 보면 이뻐.”
“그러면 부처님께서 원하시는 게 뭔가요?”
“아마도... 약찬게에 나오는 ‘53명의 선지식’을 만나게 해줘서 기도하는 뜻도 알고
기쁨과 보람을 누리게 하고 싶으신가 봐. 그리고, 참! 지남도는 갖고 있지?”
“지남도요? 아, ‘53 선지식’ 여행 지도! 찾아볼게요.”
“그리고 선지식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잊어버리지 않았지?”
“네, 첫째로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됩니다. 둘째는 가르치는 말씀에 순종하고 셋째는 남의 잘못을 손가락질하거나 비웃으면 안 됩니다.”
온화한 미소로 문수보살님이 선재동자의 머리에 손을 얻어 축복을 해주는 순간, 동자는 지난 날 ‘53 선지식’을 만났던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 또 춥고 배고픔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선재는 갠지스강 강가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사라 나무숲 부처님의 커다란 왕탑 아래서 사흘 동안 기도했다. ‘53 선지식’을 만나는 긴 여행이 탈 없이 잘 이루게 해달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기도였다. 그리고, 반달 같은 눈썹이 쭉 당기도록 머리를 총총 묶어 두 갈래로 꽁지머리를 틀어 올린 뒤, 허리춤에 무화과 열매 같은 오색구슬 주머니를 차고 보리가 있는 동방의 나라로 향했다.

선재는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고
커다란 왕탑서 사흘 동안 기도
화엄경 약찬게 외는 소녀 찾으러
오색주머니 차고 동방의 나라로

복성마을에서 동방의 나라 금강마을까지는 4,670 킬로나 떨어져 있어 오랫동안 걷고 또 걸어야 했다. 또한 동방의 나라는 사계절이라 장맛비가 왔다가 낙엽이 지더니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걷고, 걷고, 또 걷다가 겨울이 되어 처음 만난 눈은 혀를 내밀면 달콤한 사탕같이 맛있을 줄 알았으나 아이쿠! 웬걸…. 작은 눈송이와 바람이 같이 날아와서 선재동자의 얼굴을 매섭게 때렸다. 걸어가기가 점점 힘든 그는 차라리 기어가는 게 편하다 싶어 땅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이 와서 좋다고 뛰어다니던 동네 강아지들이 친구인 줄 알고 냄새를 킁킁 맡으며 다가오다가 얼굴을 보더니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간다. 얼마나 기었을까. 해가 보이지 않아 아침인지 낮인지 저녁까지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도대체 애를 어디 가서 찾지?”
춥거나 배고픈 것은 문수보살님의 마술 같은 신통력으로 해결되었으나, 보리를 찾을 방법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몸으로 눈으로만 보리를 찾아야만 했다.
“아아…. 이래서 육안, 혜안, 법안하셨던 거구나”
선재는 기운이 빠져 축축한 땅바닥에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런 선재의 마음을 알고 위로하듯 눈보라가 차츰 차츰 줄어들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쨍쨍 비춘다.
그는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빗어 올리고 양지바른 곳에 앉아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부처님, 보리가 있는 곳을 제발 좀 가르쳐 주소서, 옴 아비라 훔캄 사바하!….”
하지만 기도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처님, 지금 바쁘신가? 심부름 시키실 때는 언제고 왜, 내 기도를 안 들어 주는 거지…. 옴, 아비라 훔캄 사바하. 옴 아비라 훔캄 사바하. 옴 아비라 훔캄 사바하…. (49번)
그때 어디선가 와글와글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겨울인데 웬 개구리 울음소린가 싶어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음호에 계속)

【각주】
용수보살 : 인도의 승려, 대승불교의 아버지, 제 2의 부처님이라고 함.
법신 : 비로자나부처님, 보신 : 노사나 부처님, 화신 : 석가모니 부처님.
미간 : 눈썹과 눈썹 사이. 광명 :밝고 환한 빛.
보현행원 : 보현보살의 십대 원을 행하는 것. (부처님을 따르고, 찬탄하며, 베푸는 일 등..)
염송 :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외우는 기도.
선지식 : 수행자들의 스승으로 성품이 바르고 덕행을 갖춘 사람
육안 : 사람의 눈. 혜안 : 마음으로 보는 눈. 법안 : 부처님법으로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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