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분은 범어이다. 한자로는 ‘해도현(解倒懸)’ 즉, ‘거꾸로 매달린 것을 풀어준다’는 것이다. 거꾸로 매달린 것은 살아생전에 죄를 많이 지은 중생들이다.

우란분절은 목련존자 설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은 천안(天眼)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효심이 지극한 목련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천상과 인간계를 두루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옥계를 살펴보았다. 어머니는 아귀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었다.

슬퍼하는 목련존자에게 부처님이 어머니를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려줬다.

목련존자는 7월 보름날을 기다렸다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공양을 올렸다. 이 공덕으로 인해 목련존자의 모친은 아귀도를 벗어나 고통의 옷을 벗었다. 백중기도 기간이 되면 필자는 절로 바리데기 설화가 떠오른다. 바리데기 설화는 무속의 오구굿 또는 해원굿의 일부를 구성하는 서사무가(敍事巫歌)로 구전되어 왔다. 무당이 굿을 하기 전이나 하는 중간에 등장하는 사설(辭說)에 이 설화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바리데기 설화의 서사는 아래와 같다.

옛날 어비대왕이 계속해서 딸만 낳았다. 일곱째도 딸이 태어나자 왕은 그 딸을 버린다. 버려진 바리데기가 한 노부부에 의해 구해져 키워진다. 먼 훗날 왕과 왕비가 죽을병에 걸린다. 이 병을 치유할 약은 저승의 생명수뿐이다. 여섯 공주 모두 저승에 가길 거부했지만 바리데기만이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에 가겠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생명수를 구한 바리데기는 이승으로 돌아와서 부모의 생명을 구한다. 바리데기 설화는 아름답다. 부모가 바리데기를 버렸지만, 바리데기는 부모를 구한다. 부모가 이승의 왕이라면 바리데기는 저승의 여왕이자 이승과 저승을 잇는 세계의 여왕이다. 부모가 힘으로 세상으로 다스리지만 바리데기는 자비로 세상을 다스린다.

바리데기 설화는 부모를 구한다는 점에서는 목련존자 설화와 유사하고, 저승세계로 여행을 간다는 점에서는 오르페우스 설화와 유사하고, 죽었다가 되살아난다는 점에서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예수’로 이어지는 부활신화와 유사하다.

백중 기간에는 효(孝)의 가르침에 대해 깊이 숙고해볼 일이다. 《심지관경》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선남자야,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부모님이 계신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부모이 안 계신 사람이다. 부모님께 효도해서 받는 복과 부처님께 공양해서 받는 복은 같으니 부모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

또한, 《인욕경》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선의 지극한 것은 효도보다도 큰 것이 없고 악의 지극한 것은 불효보다 더 한 것이 없다.”

흔히 부모와 자식의 사이를 천륜(天倫)이라고 한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리신 도리라는 의미이다. 강조하건대 부모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섬겨야 할 첫째 부처님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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