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국을 오가며 인언견언’의 견지에서 쓴 보석 같은 글 모음집

 

말로 말을 버린다

이민용 지음

모시는 사람들

20,000원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한 뒤 한창 학문적 성숙을 향해 가는 36세의 나이. 이민용은 홀연 학문 현장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당시 대학의 부조리한 관행 속에서 배제되는 과정이 학문 자체에 대한 회의를 불러온 것이다.

미국에서 10년 동안 사업에 몰두하던 그는 우연한(필연적인) 기회에 하버드 대학의 동양학 강의 하나를 청강하면서, 다시금 학문의 길로 돌아온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한국 불교는 중국 불교 전통과 일본 불교 특징 사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상황. 이런 현실은 그의 학문적 의욕을 자극했다.

미주 한인사회는 기독교가 종교를 넘어 하나의 생활양식이 된 지 오래다. 불교를 신앙하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로서 그는 끊임없이 미국 내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위상을 탐문하고, 그 진로를 모색한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 제출을 포기하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초빙교수, 방문교수로 강의하거나, 한국불교연구원,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소임’을 수행해 왔다. 그것은 학자의 책상 위와 책갈피에, 그리고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 상품으로서 존재해왔던 기존 불교학의 틀을 깨고 껍질을 벗겨 내온 과정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평생 불교학 언저리를 떠돌며 만났던 이기영, 서경수, 박성배, 안병무(기독교), 일타 스님 등 국내 불교학 석학들의 면모를 알려준다. 그리고 스승 이기영을 통해 접한 장 필리오자, 포르 드미에빌, 주세페 투치, 라모트, 외젠 뷔르누프 등 서구의 불교학자에 이르기까지 짧은 글 속에서도 그들의 학문적 업적을 간접 경험하게 한다.

저자의 좌우명은 ‘인언견언(因言遣言)’. 《대승기신론》의 경구다. 말의 위험성, 말로 인해 오해되고 빚어질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를 무릅쓰고 자기주장을 펼쳐 나갈 때, 자신을 경계하게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세상사나 불교(계)의 현장에 대해 침묵하지 않되, 말하는 바의 한계와 위험성을 항상 경계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자 ‘인언견언’의 견지에서 써 온 종교론, 불교론, 인생론이다.

5년 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직을 맡은 1941년생 이민용은 불교인이면서 또한 불교학자이면서, 그러나 ‘거리를 둔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이를 잊은 채 보석 같은 글을 빚어내며 ‘영원한 현역’의 길을 걷고 있다.

-최승천 기자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