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의 장소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동물원이다. 누구나 한 번은 다녀갔을 것이다. 나도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에 과천의 서울대공원 내의 동물원으로 가족 나들이를 갔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장소로 기억된다.

최근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살던 얼룩말 ‘세로’의 탈출을 계기로 동물원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언론은 물론 개인 블로그와 유튜브에서도 관련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동물원 존폐 논란은 꽤 오랜 주제다.

이런 가운데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최근호에서 ‘얼룩말 탈출 그 후, 동물원의 존재 이유를 묻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런 논란을 한걸음 진전시킬 수 있는 한 동물원을 소개했다. 청주동물원은 동물원의 기능을 획기적으로 전환한 것인데, ‘야생동물 보호’가 그것이다.

현대 동물원의 역사는 200년쯤 전인데, 1829년 세워진 런던동물원을 현대 동물원의 기원으로 본다. 애초의 동물원은 보호가 목적이 아니었다. ‘동물학과 동물생리학의 진보 및 동물계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소개한다’라는 목적을 내세웠지만, 오락 장소에 더 가까웠다고 한다. 동물을 구경거리로 내세워 돈벌이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동물원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지원으로 고상한 지식의 사원을 건설한다는 부르주아적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기에 적합했다.” “동물원은 머나먼 이국 땅과 그곳에 사는 동물들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고 자처하는 것도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식민화를 합리화하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는 시각도 있다. 동물원의 역사에서 칼 하켄베크는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는 동물을 포획, 판매, 전시하는 사업을 했다. 그는 동물뿐 아니라 북극과 수단에 사는 사람을 데려와 전시하기도 했다. [임정은, 세상을 바꾼 동물]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은 창경원 동물원이다. 1909년 개원했으며,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한 1984년까지 유지되었다. 애초 이곳은 창경궁으로 고종이 강제 폐위된 뒤에는 순종의 처소로 쓰였다. 그러나 일제는 창경궁 내의 행각·궁장(宮墻)·궁문을 헐어버렸으며, 이어서 창경궁 북쪽 춘당대에 식물원을 세우고 보루각 자리에는 동물사를 지어 유서 깊은 궁궐의 모습을 다른 형태로 바꿔버렸다.[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불교에서는 동물을 사람과 다름없는 존재로 여긴다. 선어록에서는 동물이 수행자의 도반, 지킴이, 불성을 지닌 존재로 등장한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사는 동물과는 사뭇 다른 존재였다.

일부 동물은 인간과 매우 가까운 사이다. 식량이 되어주었으며, 무거운 짐을 날라다 주었다. 다른 동물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역할도 했다.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말과 코끼리는 전쟁에 동원되어 역사를 바꾸는 동물로 기록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병을 옮기는 노릇도 했으니 인간과는 애증의 역사를 써왔다.

동물원은 다양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교육, 연구, 보전 등의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평가도 물리칠 수 없다. 그러나 동물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동물원이 아무리 좋은들 그들에게는 닫힌, 만들어진, 제한된 공간이다. 그들의 고향은 야생이다. 동물원에 들어오면 야생의 위험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겠지만, 인위적인 공간과 시스템에 길들여져야 한다. 가축화된 동물 이외의 동물에게는 감옥살이나 마찬가지다.

동물원의 동물을 바라보면서 마음 한켠에 이는 불편함은 박탈된 야생의 삶을 그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동물원 나들이가 지금의 동물원 시스템을 유지시켜주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이르면 불편함을 넘어 불쾌함이 들기도 한다.

동물원을 구경거리에서 야생동물 보전을 위한 장소로 바꾸어가거나, 동물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그래서 반갑다. 동물들이 그들의 성질대로 살아가는 세상은 사람들에게도 분명 좋은 세상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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