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에는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절(忠節)을 추모하는 6월 6일 현충일이 있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 6월 25일이 있다.

흔히 근대화의 3요소로 산업화, 민족주의, 자유인의 출현을 꼽는다. 근대화의 3요소 중 민족주의는 파시즘의 사상적 근간이 됐다. 2차 세계대전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 과정에서 야기된 것이고, 그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이 바로 민족주의이다. 독일은 게르만우월주의를 내세우면서 홀로코스트를 자행했고, 일본은 대동아공영을 내세우면서 난징 대학살을 자행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민족주의는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즐겨 썼던 레퍼토리였다. 국민의 대부분이 반감 없이 쓰고 있는 주민등록번호도 실은 일제가 조선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인 조선호적령이나 조선기류령에 기초한 제도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도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라는 이름의 개인식별번호가 존재하지만 최대 10번까지 변경할 수 있으며 공공기관이나 금융거래에서만 신분확인을 위해 쓰이도록 용도를 제한하고 있다. 근·현대사 과정에서 민족주의라는 명목 아래 개인의 자유가 심대하게 침해된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민족주의가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약탈하는 명분인 동시에 약소국이 강대국에 맞서는 명분이기도 했다. 무인도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공동체에 소속되어 살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도 공동체주의가 확장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도 석가족의 멸망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코살라국 비두다나왕이 석가족의 카필라성을 향해 출정했다. 부처님은 이 소식을 들으시고 카필라국으로 가는 큰 고목나무 아래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비두다나왕이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잎이 무성한 나무숲을 놓아두고 어찌하여 말라버린 고목나무 밑에 계십니까?”
“일가친척의 그늘이 다른 그늘보다 시원하기 때문이오.”

비두다나 왕은 석가족을 정복하는 것을 중지해 달라는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물러났다. 하지만 비두다나왕은 카필라국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멈추지 않았다. 2, 3차 출정 때에도 부처님은 고목나무 아래 앉아 있었으므로 비두다나왕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비두다나왕이 네 번째 출정을 하자 부처님은 “과거세에 맺은 깊은 원한을 막을 수 없다”는 설한 뒤 고목나무 아래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말년에 고국의 멸망을 지켜봐야 하는 부처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 부처님도 가족이라는 공동체, 민족이라는 공동체주의를 부정하지 않았다. 부처님에게도 일가친척의 그늘은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의 테두리였던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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