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성지안 ‘파란 부채’, ‘한거잡영’, ‘학도에게 보임’

 

환성 지안(1664~1729)은 청허 휴정의 선맥을 계승한 화엄의 대강백이다. 15세 때 양평 용문사로 출가해 상봉 정원에게서 구족계를 받고, 17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월담 설제에게 법을 받았다. 환성은 선의 심오한 경지와 원용무애한 화엄의 세계를 맑고 담담한 서정으로 표현하였다. 삼매의 경지에 이른 선사는 난새의 꼬리[깃털]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 〈파란 부채(靑扇)〉이다.

  푸른 난새의 긴 꼬리가 구름 속에서 떨어져
오월 염천에 눈바람을 일으킨다
한번 휘두르면 지긋지긋한 더위 속일 뿐이랴
산승의 명리와 공을 모두 떨어 버리네

靑鸞毿尾落雲中 五月炎天做雪風 
一揮何啻欺煩暑 拂盡山僧名利功

난새는 전설 속에 나오는 상상의 새이다. 푸른 난새의 긴 꼬리가 구름 속에 떨어져 오월 염천에 눈바람을 일으킨다고 표현했으니 가히 놀라운 선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 파란 부채를 한번 휘두르면[본성을 깨닫고 보면] 엄청난 더위를 날려버릴 뿐만 아니라 마음의 치성한 번뇌와 명리와 공명까지도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한편, 고요한 선정의 상태는 망념이 배제된 순수한 마음의 상태로서 무심의 경지이기에, 허상을 배제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대하게 된다. 환성은 〈한가히 지내며 멋대로 읊다(閑居雜吟)〉에서 말없이 존재하는 자연으로부터 진여의 오묘한 세계를 관조하고 있다.

줄 없는 거문고 한 가락에 누가 화답할까
바람과 구름 절로 있어 종자기가 되어 주네
솔 이슬이 발에 가득해 승려의 꿈 차가우면
덩굴에 걸린 반달이 작은 누각 처마에

無絃一曲孰能和 自有風雲作子期
松露滿簾僧夢冷 半輪蘿月小樓楣 

줄 없는 거문고는 줄이 없어도 마음속으로는 울린다고 하여 이르는 말이다. 심산유곡의 산사에 찾아오는 사람 없지만, 선사에게 바람과 구름은 지음(知音)이다. 종자기와 백아는 춘추 때 사람이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오직 종자기만 그 곡조의 의미를 알아들었다고 한다. 뒤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이제 세상에는 내 곡조를 알아줄 사람(知音)이 없다.”라며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고 한다. 화자는 솔 이슬이 발에 내리도록 선정에 들고 있다. 그 성성적적한 상태는 덩굴에 걸린 반달이 작은 누각 처마에 걸려 있을 때까지 유지되고 있다. 임제 종지를 계승한 환성의 올곧은 수행정신은 학도들의 올바른 자세를 독려하는 시 〈학도들에게 보임(示學徒)〉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돌에 앉아 단단함을 배우고 물에서 맑음을 배워
소나무 대하면 곧음 생각하고 달을 보면 밝음 생각하라
말없는 삼라만상이 모두가 스승이고 벗이니
비록 홀로 산림에 살아도 주인과 손님이 되느니라

坐石學堅水學淸 對松思直月思明 
無言萬象皆師友 唯獨山林主伴成

돌에서 부동심을, 물에서 청정함을 배우고, 소나무에서 곧음을, 달을 보고 밝음을 생각하며 수행정진에 힘쓸 것을 독려하고 있는 선사이다. 아울러 말없는 삼라만상 모두가 스승이 벗이 되니 홀로 산중에 살더라도 주인이 되고 손님이 될 수 있음을 설하고 있다. 그래서 평상심이 도임이 강조된다. 〈연해 스님에게 주다(贈燕海師)〉에서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눈썹에 있고, 서쪽에서 온 본래의 면목도 그저 지금과 같으니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는 일상 행위가 곧 도라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마음 밖에 다른 곳에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도란 그 사람의 속눈썹에 있는 것이요
서쪽에서 온 면목도 그저 지금과 같을 뿐
물마시고 밥 먹을 때 항상 나타나 있는데
무엇 하러 허덕거리며 다른 곳에서 찾으랴

道在當人眼睫裏 西來面目只如今
渴飮飢飡常現露 何用區區別處尋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