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24-소만

‘만물이 생장해 가득 찬다’는 뜻
소만에 가뭄, 곧이어 여름 장마
집 나간 사람도 ‘사월’에 들어와
‘홍화염색’ 해보면 어럽지 않아

김해순작.
김해순작.

 

소만(小滿)은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들어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滿)는 의미가 있다. 이 소만 절기의 날짜 차이로 부처님오신날 날짜가 달라지기도 한다.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인 소만(小滿)은 올해는 5월 21일이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 보면 4월이라 맹하(孟夏) 초여름 되니 입하, 소만, 절기라 하니 이때부터 여름의 기운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한다.

봄은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되어야 봄의 기운이 느껴지고, 여름은 입하를 지나고 소만이 되어야 여름의 기운이 느껴지며, 가을 역시도 입추를 지나 처서에 가을의 기운이 느껴지고, 겨울은 입동이 지나고 소설(小雪)이 되어서야 겨울을 느낀다고 한다.

물들임.
물들임.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입절기를 지나 교절기인 우수, 소만, 처서, 소설이 되어야 계절이 바뀌었음을 체감하게 된다. 우수에 대동강 물이 녹고, 소만에 풀은 억세어지며, 처서에 모기 입은 삐뚤어지고, 소설엔 빚을 내서라도 춥다고 하는 이러한 말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교절기를 말함이다. 입하를 지나 소만이 되면 나물종류는 독성이 강해지기 때문에 먹기가 어려웠다. 소만 문턱만 넘으면 여름으로 들어서기 시작하니 식물이 성장하는 시기로 주로 이 무렵에 모내기 준비를 시작한다.

사월(巳月)은 모내기 철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같이 일을 한다. 그래서 집 나간 사람도 ‘사월’에 들어온다고 한다. 절기상으로는 이미 여름이 되었지만 모내기철이 다가오는 소만과 망종무렵이면 꼭 심한 가뭄이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가뭄현상은 여름의 장마를 불러 들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대지의 기운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서 장마로 쏟아붓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박현종작.
박현종작.

 

가뭄으로 땅속의 작물들은 애타게 비를 기다리지만 도토리나무는 오히려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든 이때에 꽃의 수정이 잘되어 가을이면 도토리 풍년이 된다. 밀, 보리, 이삭도 가뭄에 충분한 햇빛을 받아 속이 알차게 영글어 간다. 가뭄에 애타기도 하지만 하나의 과정처럼 각각의 상황에 맞춰 자라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지 싶다.

소만은 ‘사월’의 중앙에 해당하는 절기이다. ‘사월’은 양기가 힘차게 활동하는 시기로서 만물이 힘찬 에너지를 뿜어내며 정열적으로 성장하며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시기이다. ‘사월’은 모내기 철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같이 일을 한다. 그래서 집 나간 사람도 ‘사월’에는 들어온다고 한다.

염색.
염색.

 

사(巳)는 물상적으로 뱀을 의미한다. 뱀은 드러난 곳 보다는 음습한 곳에서 활동한다. 장애물을 거침없이 통과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말이다. 방향은 손방(巽方)이며 시간으로는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를 지칭한다. 계절로는 초여름이다.

‘사월’은 육양지기로서 음기를 시생(始生)하는 전 단계이므로 자칫 방향성을 잃고 우왕좌왕하기 쉽다. 명리학에서는 사(巳) 즉 화(火)의 기운이 강한 사람들은 폭발적인 에너지로 활동적인 모습이 돋보이기도 한다. 뱀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 물러서는 점이 없는 것처럼 이런 기운이 넘치는 달이 ‘사월’이다. 화(火)의 기운이 강한 사람들은 거침이 없으며 불타는 욕망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영작.
이미영작.

뱀은 양기의 상징으로 성질이 급하니, 화(火)의 기운이 강한 사람들은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한다.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활동적인 일을 하는 것이 성향에 어울린다고 보겠다. 하지만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을 아시는가. 하늘 끝까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후회할 때가 있다. 극히 존귀한 지위에 올라간 자가 겸손히 은퇴할 줄 모르면 반드시 패가망신(敗家亡身)하게 된다.

‘사월’의 괘상을 보면 양효(陽爻)만 6개(六陽)다. 건하건상(乾下乾上)으로 자강불식(自彊不息)의 상(象)으로 중천건괘라 한다. 64괘의 첫 번째 괘이자 《주역》을 대표하고 있는 중천건괘이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유약한 물에 잠긴 잠룡(潛龍)에서 시작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비룡(飛龍)까지 발전하지만, 정도를 지키지 못하면 끝내 높이 올라 후회만 남는 용’이 되어버린다. 건괘의 마지막 양효(上九)는 너무 높이 올라가 후회만 남는 ‘항룡유회’이다. 겸손자중(謙遜自重)하라는 뜻이다. 오를 대로 올라갔으니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말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중정이다.

조각보.
조각보.

‘사월’의 적색(赤色)은 한자에서 비슷한 뜻을 가진 글자로 紅(홍)과 朱(주), 진홍(眞紅)이 있다. 먼저 적(赤)부터 보면 대(大)와 화(火)의결합으로 ‘큰 불’, 곧 훨훨 타오르는 장작더미의 불이다. 반면 홍(紅)은 천적색(淺赤色)으로 비단에 물들일 때 천초(茜草), 즉 꼭두서니 뿌리를 끓여 염색을 해서 얻는 색이다.

진홍(眞紅)색은 규합총서에서 말하는 색으로 잇꽃(홍화)으로 물들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잿물로 홍색을 빼어 오미자국을 넣고 꽃물이 올라오면 색을 천에 거두었다 다시 잿물로 내려 염색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설명만으로는 도대체 뭔 소린지 헷갈리기도 하는데 쉽게 풀어 보면 홍화가 가지고 있는 황색소를 제거하기 위해 면에 염색 후 다시 색을 빼어 염색하는 개오기를 이야기한다.

주현숙작.
주현숙작.

전통 방법인 홍화염색은 힘들다고 많이 하지 않는 염색이다. 그러나 해본 사람들은 ‘별로 어렵지 않다’면서 쉽게 하고 있다. 해 본 사람과 안 해 본 사람의 차이다. 일단 하다 보면 쉬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론만 가지고 하다 보면 어렵게 느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지기도 한다.

예전부터 해오던 꼭두서니 뿌리, 홍화. 소목 등으로 적색을 만들고 있지만, 쉽게 변색되는 단점이 있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불교미술에서 불화는 적색·녹청·군청을 주조색으로 하며, 적색과 녹,청 군청의 간색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특징이 있다. 불화를 그리는 사람을 불모(佛母) 혹은 금어(金魚)라 부른다.

한옥순작.
한옥순작.

 

녹음이 깊어지는 봄의 정점을 지나 여름의 기운이 느껴지는, 신록을 만끽할 수 있는 청량한 계절이다. 어디선가 스~니~임~ 하는 소리에 밖을 보니 자원 비구니 스님이 맛있는 쑥개떡을 양손 가득 바리바리 싸들고 벌써 부처님 전에 들러 나온다. 쑥이 가득 들어 진초록색을 띠는, 자원 스님의 특별한 쑥개떡 공양.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 가득한 날 찔레꽃 향기 날아와 바람 불어 좋은 날이다.

(사)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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