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봉선사, ‘오도송’, ‘전법게’, ‘열반송’

 

일제 강점기 한국인 최초 고등판사였던 이찬형(1888~1966)은 법관이 된지 10년째 되던 해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어느 젊은이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런데 그것이 오심임이 밝혀지자 양심의 가책과 삶에 대한 회의를 품고 ‘엿 장수’를 하며 참회의 길에 나섰다. 38세의 늦은 나이에 금강산 도인으로 알려진 석두화상의 제자가 되어 원명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신계사 법기암 토굴에서 한번 앉으면 일어날 줄을 모를 정도로 치열한 수행에 매진해 깨달음을 얻었다. 1931년 44살 때의 일이었다. 늦깎이 제자가 토굴을 부수고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석두화상은 원명을 불러 확인을 한 다음, 전법게를 내리며 그의 깨달음을 인가했다.

다음은 효봉선사의 오도송이다.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속 거미집에 물고기가 차 달이네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海底燕巢鹿抱卵
火中蛛室魚煎茶
此家消息誰能識
白雲西飛月東走

은산철벽을 깨고 난 뒤 모두가 하나가 된 경지를 읊고 있다. 바다와 땅, 하늘 사이의 모든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에 바다 밑 제비집에서 사슴이 알을 품고, 불 속 거미집에서 물고기가 차를 다릴 수 있는 것이다. 자신과 우주가 하나가 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 보니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선의 경지에서는 가능하다. 그것은 언어를 초월한 이언절려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논리성을 충격적으로 부각시켜 강렬한 언어의 대비를 통한 선시의 미학이 있다.

1936년 한암선사는 오대산 상원실에서 원명에게 '포운(泡雲)'이라는 호를 지어주고,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렸다.

망망한 큰 바다 물거품이요
적적한 산중의 떠도는 구름이네
이것이 내 집의 다함없는 보배이니
오늘 남김없이 그대에게 넘겨주노라.

茫茫大海水中泡 寂寂山中峰頂雲
此是吾家無盡寶 灑然今日持贈君

금강경의 “모든 유위법은 꿈이고 환상이고 물거품이고 그림자이다. 또한 이슬과 같고 번개불고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一體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는 사구게가 말해 주듯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참모습이 아닌 허상(꿈, 헛것, 물거품, 그림자)이거나, 불멸의 영원상이 아닌 찰나(이슬, 번개)이다. 수행자가 벗을 삼는 적막한 산중에 떠도는 구름 역시 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원명에게 한암은 일체가 '공'이라는 무진보배를 남김없이 주어 법을 전하고 있다.

효봉은 깨달음을 얻은 후 금강산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송광사에서 주석하며 많은 제자들을 제접하고 자비실천의 보살행을 하였다. 이 무렵 꿈속에서 고봉(1351~1428)으로부터 몽중설법을 듣고 효봉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아울러 법명을 보조 지눌(訥)을 배운다(學)는 의미를 담아 학눌로 하였다. 이어 해인사, 동화사, 통영의 미래사 등 여러 곳에서 선풍을 진작하였다. 특히 통합종단으로 출발한 조계종의 초대종정으로 추대되어 “큰 집이 무너지려 하니 대중들은 힘을 합쳐 붙들라”며 첫째도 화합, 둘째도 화합을 강조했다. 스님은 세수 79세(1966) 법랍 42세로 다음의 열반송을 남기고 원적에 들었다.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거 다 군더더기
오늘 일을 묻는가?
달이 일천 강에 비치리

吾說一切法
都是早騈挴
若問今日事
月印於千江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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