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23-입하

원철 스님

‘여름이 든다’는 뜻, 여름의 시작

풍수 24개 방위로는 ‘손=巽’ 방위

동남향 주택, 최우수 향(向)의 집

사월(巳月)에 자연 염재 널려 있어

복합염색.
복합염색.

 

입하(立夏)는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봄이 끝나고 여름을 알리는 시기이다.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麥凉), 맥추(麥秋)라고도 하며, 초여름이란 뜻으로 맹하(孟夏), 초하(初夏), 괴하(槐夏), 유하(維夏)라고도 부른다. 입하란 ‘여름이 든다’라는 뜻으로 여름의 시작이다. 입하부터 보통 초여름의 날씨를 보이기 시작하는데 봄은 저 멀리 물러나고 산과 들 초목에는 푸르는 신록의 계절로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해충도 많아지고 잡초가 여기저기 왕성해지니 잡초제거에 바쁜 시기다.

사월(巳月)은 입하와 소만이 있어 여름이 시작되고 열기가 땅으로 스며드는 시기이다. 오행으로는 불을 상징하는 화(火)이며 색으로는 청색을 약간 품은 적색이다. 즉 목의 청색과 남쪽의 적색이 혼합된 간색, 보랏빛이 도는 적색으로 보면 되겠다.

양(陽)의 기운은 입하로 시작하여 소만(小滿)에 이르러 극에 달한다. 진(辰)월까지 봄꽃이 피어 희망과 염원을 담은 불꽃은 사월(巳月)이 되어 본격적인 여름 남쪽 적색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봄에 열심히 준비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결실을 맺기 위해 여름의 왕성한 활동을 시작으로 가을에 충분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모시먹염색.
모시먹염색.

입하는 풍수에서 말하는 24좌향 즉, 24개 방위로는 ‘손=巽’ 방위이다. 좌향(坐向)이 의미하는 단어는 풍수용어로서 집이나 묘가 자리하고 있는 방향을 말한다. 혈지(穴地), 혈판(穴坂), 당판(堂坂)이라고도 하는 혈(穴)이라는 용어를 정리하면 산소 자리를 선택할 때 음택(陰宅)이라 칭하며 시신을 매장하는 장소를 말한다. 양택(陽宅)이라 칭할 때는 주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혈(穴) 가운데서 용맥이 내려오는 뒤쪽은 좌(坐)라 하고 앞은 향(向)이라 한다. 즉 좌향(坐向)이라 하는 용어가 여기서 사용된다.

풍수지리에서 방위는 모두 24개로 되어 있으며 좌와 향은 서로 대칭이다.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듯한 용어 중에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것이 있다. ‘배산(背山)’은 뒤로 산을 등지고 있다는 뜻이고, ‘임수(臨水)’는 앞으로 강, 시냇물, 연못 따위의 물을 내려다보거나 물에 닿았다는 뜻이다. 배산(背山)하는 것은 뒤에 산이 있는 곳으로 좌(坐) 임수(臨水)하는 쪽은 향(向)이다. 좌향(坐向)을 결정하는 방법에는 여러 법칙이 있다.

입하는 사월(巳月) 여름의 시작 지점이며 방향으로는 손방(巽方)이며 정동(正東)과 정남(正南) 사이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한 15도 각도 안의 방향이다. 손방(巽方)의 손(巽)은 ‘공손할 손’이지만, 주역의 괘상으로는 손괘(☴)를 나타내고, 풍수지리에서는 진, 손, 사(辰, 巽. 巳)와 더불어 손궁(巽宮) 즉, 동남방위의 3개를 나타낸다. 풍수에서 동남방위 즉, 동남향의 주택은 매우 좋은 향(向)의 집으로 말하고 있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동남쪽을 거쳐 남쪽으로 이동할 때의 따스한 기운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물들임.
물들임.

 

청색의 목의 기운이 해가 떠오르는 방향 동쪽이며 남쪽으로 기운이 전달되어 서쪽으로 기울어 가면서 북쪽에서 응축된다. 사월(巳月)이 되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염재는 지천이다. 그중에서 쉽게 채취 가능한 나뭇가지들 왕성하게 자라나오는 싱그런 나뭇잎들 손방의 색으로는 보라색 정도의 간색이라면 보라색 염색을 하는 것은 쉬운 듯 어려운 듯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수입되는 로그우드나 귀한 약재인 자초를 가지고 보라색을 염색한다면 한방에 쉽게 끝낼 수 있겠지만 자초로 보라색 내는 일이 고문헌을 보게 되면 그리 쉽게 나오는 색은 아니다. 그럼 로그우드, 이건 쉽다. 로그우드 염재를 염료상에게 구입하여 물을 붓고 끓여서 백반 매염이든 철매염이든 매염에 의해 다양하게 보라색을 만들 수 있다.

붓염색.
붓염색.

 

천연염색은 쉽게 끓여서 염색하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은 화학 염색처럼 물에 담갔다 빼면 그냥 염색이 되는 줄 안다. 말 그대로 천연염색이다 보니 쉬운 듯하면서 거쳐야 하는 공정이 수작업이 많아 이만저만 고된 노동이기 일쑤다. 좋아서, 재미있어하다가 보면 몸은 지쳐서 그만해야지 하며 한숨을 쉬는 작가들도 있다.

보라색 중 정보라색 만들기는 홍화와 쪽을 이용하여 색을 내지만 이것 역시 어려운 염색이다. 쉬운 듯하면서 어려운 천연염색 시간이 지나면서 사계절이 품고 있는 색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색을 통한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잡초들이 어우러져 색을 만들어 낼 때 천연염색의 기쁨은 배가 된다.

송영희작.
송영희작.

 

사월(巳月)은 12지신 중에 뱀의 달이다. 뱀은 우리 설화 속에서 주로 인간을 해치려는 사악한 존재로, 지혜로운 존재로, 또한 긍정과 부정의 존재로 등장한다. 강원도 치악산에 있는 상원사(上院寺)의 연기설화(緣起說話)도 뱀이 인간을 해치려다 실패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어려서 동화책이나 이야기로 한 번쯤은 들었을 이야기다.

이경호작.
이경호작.

 

어느 나무꾼이 두 마리의 꿩이 뱀에게 잡혀 먹히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뱀을 죽여버리고 살려주었다. 그날 밤 산속의 어느 집에서 젊은 여인을 만나 대접을 받으며 자게 되었다. 한밤중에 눈을 떠보니 큰 뱀이 자기의 몸을 칭칭 감고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여인은 낮에 죽인 뱀의 화신으로 죽은 남편 뱀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었다. 그때 어디선지 종소리가 울려왔고 뱀은 도망을 가버렸다. 이튿날 종소리가 난 곳을 찾아가 보니 퇴락한 종루에 꿩 두 마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그것이 오늘날의 상원사이다.

쪽물발효.
쪽물발효.

12지신 중 하나인 뱀신은 ‘청룡사 성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부처님 설화에 등장한다. 어느날 뱀신은 꿈에서 부처님께서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향기로 인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하여 뱀신은 부처님께 감사하며 그 이후로는 뱀신과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과 축복을 전해 주고 있다고 한다. 뱀신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인 뱀에 관한 이야기로, 불교 사후 세계관이 담겨 있는 ‘신과 함께’ 라는 영화 저승편에 나오는 이야기는 색다르게 전개된다. 죽고 나서 42일째 되는 날 여섯 번째의 심판관 앞에 서게 되는데 독사지옥 변성대왕 앞이다. 살인, 강도, 고문, 도둑질 및 역적질을 한 자가 받게 되며 사후 42일이 되면 받는 여섯 번째 심판이다. 굶주린 뱀들이 우글거리는 구덩이로 옥졸이 죄인을 밀어 넣으며, 뱀들이 죄인의 몸을 감아 끊임없이 물어뜯어 죄인에게 고통을 주는 형벌이다. 《불설예수시왕생칠경》에 10대 지옥으로 나뉘어지며 사후 49일 동안 10번의 재판을 통해 살아온 과정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면서 잘못했던 것들을 반성해 보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새로운 시작과 변화의 계절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자비롭고 참된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사)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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