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작은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올해 초 새 주제를 ‘자연의 권리’로 정했다. 이 주제의 책과 논문을 읽고 느낌과 생각을 나누고, 이 내용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 자연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 이 모임의 취지이다.

애초 이 모임은 가축 살처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2020년이었다. 이해 12월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로 수천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 조류인플루엔자는 200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1~2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정부는 전염병이 발생한 농가는 물론 인근 농가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한다. 이른바 예방적 살처분이다.

살처분이라는 말이 섬뜩하다. 산 채로 혹은 죽여서 땅에 묻는 것이다. 일부는 분쇄해 사료를 만들기도 한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산 채로 묻는 것은 잔인하다. 침출수로 지하수가 오염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이후에는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고통 없이 죽이는 방식을 적용했는데, 이 또한 눈 뜨고 보기 힘들다.

가축 전염병이 왜 창궐하는 거지? 살처분하지 않는 방법은 없는 걸까? 가축도 생명일진대 저리 죽여서는 안 되는 거 아니야? 이런 물음들이 달라붙었다. 몇 사람이 모여 생각을 나누자고 했다. 지난 2년여 동안 불교의 생명관·동물관, 살처분 현황, 살처분 외 방법, 육식과 채식, 먹거리의 생산·유통·소비에 대해서도 읽고 생각을 나눴다. 꽤 많은 자료를 보았다.[다음카페 ‘살처분대안불교네트워크’에 들어가면 우리가 보았던 30여 편의 자료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살처분된 가축들을 위한 기도회도 열었고, 정부에 대해 살처분 일변도에서 벗어나 백신 처방을 도입하라는 입장을 전했다. 가축 전염병이 창궐하는 원인이 공장식 축산과 육식 위주의 식생활에 있다는 점에 착안해 채식 캠페인 손수건도 만들었다. 불교환경연대, 동물권 보호 단체 카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와 함께 관련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 살처분은 반복되었다. 전국적 확산에 이르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살처분 외의 방식인 백신 접종, 사육환경의 점진적 개선 등을 시도하지 않는 정부당국의 태도가 흐린 하늘의 황사처럼 답답하다.

‘자연의 권리’는 낯선 개념인데,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존재하는 것은 권리가 있다”라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필요한 도구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스스로의 존재가치가 있다. 자연의 권리가 성립하는 바탕은 매우 불교적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연기법에 기반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연기법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라는 문장으로 전해진다. 모든 존재는 서로 더불어,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주이멸한다는 가르침이다. 우주만물의 존재법칙이다.

연기법은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위기와 종의 멸종 등의 사태를 겪으며 생태학에 관한 관심이 높다. 이 또한 연기법의 확산이다. 철학에서도 연기법의 탐구를 볼 수 있다. 과정철학과 시스템이론 등이 그것인데, 불교의 연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과정철학은 화이트헤드가 주창해 철학의 지평을 넓혔는데, 그는 불교와 유교 등 동양의 사상에 조예가 깊었다.

불교에서는 일찍이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옹호했다.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불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세계 속에 살면서 자연을 경제발전을 위한 자원과 도구로 여겨도 괜찮다는 생각에 빠졌다. 그 결과 기후위기를 겪고 있으며, 인간을 포함한 뭇생명의 터전인 지구의 안위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의 생태철학》《지구를 위한 변론》 《자연의 권리》 《지구법학》 등이 우리 모임에서 볼 도서목록이다. 부처님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연기법을 세상의 일과 연결지어 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불자 됨, 시민 됨을 위한 훈련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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