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번 식탁을 마주할 때마다/ 내 몸 속에 들어와 고이는/ 인간의 성분을 헤아려 보는데/ 어머니 지구가 굳이 우리 인간만을/ 편애해야 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주를 먹고 자란 살 한 톨이/ 내 몸을 거쳐 다시 우주로 돌아가는/ 커다란 원이 보입니다/ 내 몸과 마음 깨끗해야/ 저 쌀 한 톨 제자리로 돌아갈 텐데// 저 커다란 원이 내 몸에 들어와/ 툭툭 끊기고 있습니다

이문재의 ‘지구의 가을’일부이다. 이 시편은 2003년 소월시문학상 당선작이다. 이문재 시인은 1연의 끝에 “지리산 실상사 공양간(식당) 배식대 앞에 붙어 있는 공양게송이다”라고 인용하면서 ‘보리’를 ‘깨달음’이라고 바꾸었다.”고 주석을 달았다. 반 생태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 ‘지구의 가을’은 우주를 먹고 자란 쌀 한 톨이 사람의 몸을 거쳐 커다란 원으로 그리면서 다시 우주로 환원되어야 하는데, 인류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지구의 육신에는 독버섯이 퍼지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에 따르면, 소의 사육면적은 전 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소들은 수억 명을 넉넉히 먹여 살릴 만한 양의 곡식을 먹어치우고 있다고 한다. 반건조 지역과 건조 지역에서의 과잉 목축으로 인해 4대륙에는 불모지가 생기고 있고, 사육장에서 흘러나온 축산 폐기물이 지하수 오염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수 인류의 과도한 육식문화를 만족하기 위해서 다수 인류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고, 그 과정에서 대기, 수질, 토질 오염 등으로 말미암아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GDP나 GNP의 기준에 따르면,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선진국이고 적게 생산하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다시 말해 대량 생산은 대량 소비를 전제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소비의 시스템은 지구 자원의 고갈을 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라는 시스템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육식문화의 수혜자가 소수의 인류이듯,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수혜자도 소수의 인류이다. 그리고 이 소수의 인류는 아무런 대책 없이 생태계 파괴를 조장하고 있다.

‘이 음식은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라는 공양게의 첫 구절을 과도한 소비문화에 맞게 적용한다면, ‘이 자원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가 될 것이다.

‘이 자원이 어디서 왔는가?’라는 구절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의 전제조건이 되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라는 구절은 ‘이 자원이 어디서 왔는가?’의 전제조건이 될 때 지속가능한 발전의 출구도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생태학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은 생태학을 ‘유기체와 그 유기체들을 둘러싼 외부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과학’이라고 정의하였다. 불교의 연기사상은 생태사상의 한 철학적인 원형이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연결돼 있는 이 법계에서는 외따로이 존립하는 존재란 있을 수 없다.

-소설가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