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22-곡우

원철 스님

“곡우비에 풍년 든다” 속담 유명

진(辰)월 황색의 간색으로 녹색

복합염색 방법 사용이 효과적

‘화개’는 감춤과 고요함을 상징

김연자작.
김연자작.

 

24절기 중 6번째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는 곡식을 깨우는 비를 뜻한다. 농사에 좋은 날씨를 기원하는 의미로 아주 중요한 절기이다. 곡우 무렵이 되면 못자리를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된다. 그래서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든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 등과 같은 다양한 속담이 전해져 내려온다.

“곡우 지나 개복치 무서워라”라는 말도 있다. 이는 곡우가 지나면 개복치가 나타나는데 개복치는 물고기 중에서도 매우 위험한 고기로서 독성을 지닌 부위가 많은 어종이다. 개복치는 성체가 되기 전에 무수한 숫자의 개복치가 죽어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개복치는 잘 죽는 생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조그마한 상처가 나거나 수질이 나쁘거나 빛이 너무 세거나 맞지 않으면 감염되어 죽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쉽게 상처 받고 죽는다고 해서 사람들 중에 예민하고 외부의 미미한 자극에도 심하게 놀라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에게 “개복치 같다”라고도 한다.

노랗게.
노랗게.

절기상으로 곡우는 봄을 마무리하는 단계이다. 방향으로는 손방(巽方)으로 24방위(方位)의 하나로서 정동(正東)과 정남(正南) 사이 한가운데를 중심(中心)으로 한 15도 각도(角度) 안의 동남방(東南方)을 말한다. 색으로 이야기하면 정동(正東)의 청색과 진(辰)월 황색의 간색으로 녹색이 된다. 좌향이니 동사택이니 서사택 이니 하는 풍수 용어에서 보듯 풍수학에서 방향이 중요하지만 색으로도 상징성과 의미를 풀어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방향성과 색을 늘 대조해봐야 한다.

천연염색으로 색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기에 어느 색을 만들어 내도 철학적 사유를 담아낼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풍수학에서 손방을 예로 들어 색으로 찾아 보면 건좌손향(乾坐巽向)이라 하는 방위에서 건좌(乾坐)는 서북쪽 방향이며 서쪽의 백색과 북쪽의 흑색 사이의 간색인 회색이 된다. 간색은 잡색이라고도 한다. 오방정색 이외의 색은 간색이나 잡색으로서 다양하게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요즘 색채용어로 파스텔톤을 만들어 내기에 좋은 염색법이 바로 간색 염색이다. 풍수지리에서 좌향(坐向)을 볼 때 묏자리나 집터 등이 건방(乾方)을 등지고 손방(巽方)을 바라보는 방향을 일컬어 건좌손향(乾坐巽向)이라 한다. 즉 서북쪽을 등지고 동남쪽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물들임.
물들임.

 

절기상으로 곡우(穀雨)는 진월(辰月) 음력 3월의 마무리로 봄의 절정에서 여름으로 가기 전 봄을 완성하는 시기이다. 색으로 말하면 간색이다. 정중앙이 황색이며 동남간방으로 황색과 청색이 섞인 색이다. 황색과 청색으로 복합염색을 해서 나오는 색이 간색이다. 간색인 녹색이나 연두색 등 초록의 색으로 물들이기 위해서는 복합염색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쪽으로 청색을 염색한 후 물오르기 시작한 나뭇가지를 채취하여 백반 매염 후 나뭇가지를 끓인 물에 넣고 염색한다.

나뭇가지의 종류는 도토리, 밤, 복숭아, 오리나무 등 탄닌 성분이 많이 함유된 가지들이 좋다. 채취하기 어려운 경우 재료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양파껍질, 치자, 황백, 황련, 메리골드 등을 구입하여 염색하면 되겠다. 염재마다 지니고 있는 색소의 특성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청색과 황색의 복합염색은 옅은 녹색에서 짙은 초록까지 색을 만들 수 있으니 청색과 황색의 농도에 따라 색 차이가 많이 나게 마련이다.

복합염색.
복합염색.

 

염재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제대로 이용하여 황색이 가지고 있는 황색소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면서 색을 만드는 것이 오랫동안 염색해온 시간의 결과물이다. 치자의 노랑은 나뭇가지, 열매 등이 가지고 있는 노랑과는 변화의 차이가 크다. 치자의 노랑은 매염제에 의해 크게 변화되지는 않는다. 나뭇가지나 열매 등은 식물이 가지고 있는 탄닌의 함량에 따라 매염제에 의한 색의 변화가 노랑, 미색, 황색, 갈색, 적갈색, 핑크색, 회색, 검정 등으로 나타나지만 치자는 매염에 의한 변화는 거의 없다.

치자열매만으로는 부족한 색의 깊이를 나타내기 위해 나무나 열매와 함께 치자를 염료로 사용하면 견뢰도 좋은 깊은 황색을 만들 수 있다. 이때는 탄닌 함량이 높은 염재를 같이 사용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맑은 노랑색을 얻고 싶으면 감물과 치자를 함께 끓여 염색해보는 것도 좋다. 감물은 발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끓여서 함께 사용해도 견뢰도가 아주 좋다. 양파, 치자, 메리골드 등은 감물과 같이 염색하면 황색을 내는 좋은 재료들이다. 철매염이나 잿물에 의한 반응으로도 다양한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경호작.
이경호작.

 

색을 만드는 데 정답은 없다. 요즘 요리법도 다양하다 다양한 요리 하듯 천연 염색도 다양한 재료들과 함께 하면 좋다. 단 주의할 것은 함께 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함께 해서 크게 도움 안되는 염재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염색을 한다. 천연염색이란 나무, 열매, 뿌리, 꽃, 잎, 등 초목에서 얻어진 것들과 숯, 황토 같은 안료를 재료로 하여 염색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식물성초목염색과 광물성 동물성 염료 등을 이용해 염색하는 방법이 있다. 염색을 하면서 색을 만들어 내는 일은 쉬운 듯 하면서도 알면 알수록 어려워 진다. 물론 누구나 다 한번 보면 쉽게 할 수 있다. 접근 방법도 다양하다. 체험으로 취미로 예술로 접근하기도 하고, 사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장인정신으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천연염색을 하고 있다.

진술축미(辰戌丑未)는 용, 개, 소, 양을 말하며 계절상 환절기로서 사계절 바뀌기 전에 한 번 씩은 들어있다. 색으로는 황색이다. 진월(辰月)은 봄에서 여름으로 가기 전 봄을 완성해야 하는 단계로, 봄의 그 화려함을 다 펼치고 여름으로 가기 전의 바로 그 시기다. 진월(辰月)의 색은 계절마다 바뀌는 황색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들어있는 색으로 환절기라고 하며 명리학에서는 화개라고 하는 화개살(華盖殺)이라 칭한다. 화개(華蓋)는 빛날 화(華), 덮을 개(蓋)이다. 화려하게 빛나는 것을 덮는다는 뜻으로 감추고 고요함으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쪽염색.
쪽염색.

진술축미(辰戌丑未)가 화개라 하니 오행(五行)으로는 토(土), 즉 땅이다. 모든 일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화개는 화개살의 특성인 화려함, 즉 큰 명예를 상징하기도 하며 일주나 시주에 화개가 있을 경우에는 부동산 재물복도 좋다 하니 화려함을 덮었다 해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또한 토의 기운은 땅의 상징이니 화개는 기본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만의 사색과 철학적 종교적 사유를 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무엇인가 늘 새로운 생각,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기에 끊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단계로 비유된다. 즉 발상을 전환하는 극단이자 시작의 단계로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황색물들임.
황색물들임.

 

진월(辰月)은 절처봉생(絶處逢生) 변화의 달이다. 운종용 풍종호(雲從龍 風從虎) 즉.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구름은 비를 내리게 해서 가뭄을 해갈하고 벼농사를 짓게 하지만, 바람은 불이 훨훨 타게 만들어서 낡은 것을 태워 버리게 만든다. 변화는 바람과 구름에서 시작된다. 사찰 장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찰의 법당과 기둥 천장 처마와 추녀 밑 등에는 용이 장식되어 있다. 법당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곳이니 용이 있어 법당을 극락세계로 향해 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상징된다. 불교에서 반야(般若)는 진리를 깨달은 지혜를 말한다. 바라밀다(波羅蜜多)는 피안의 세계로 간다는 의미이다. 피안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타고 갈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반야용선이다. 인로왕보살이 이끌고 여러 불보살이 지켜주는 가운데 불법을 수호하는 용이 반야의 지혜에 의지하여 중생을 반야용선에 태워 바다를 건너 극락정토인 불국토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야용선은 반야선에서 시작된다. 반야용선은 중생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 정각(正覺)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반야(般若 : 일체의 사물과 도리를 밝게 통찰하는 더없이 완전한 지혜)를 차안(此岸)의 중생이 생사고해를 건너 피안(彼岸)의 정토에 이르기 위해 타고 가는 배에 비유한 것이다. 용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처님과 불국토를 보호하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이곳저곳에서 유록색의 싱그런 나뭇잎들이 만발한 봄꽃들과 만나 완연한 봄을 장식하는 봄의 계절 화란춘성(花爛春盛) 만화방창(萬化方暢) 봄꽃들이 숨 쉬는 향기 따라 산사의 풍경소리와 함께 귓전을 맴돈다.

(사)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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