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비구니 승잔법

효능 스님.
효능 스님.

비구니 승잔법 불공계 일곱 번째는 진사삼보계(瞋捨三寶戒)로 다툼으로 인한 화를 참지 못하여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을 버렸다. 나는 법을 버렸다. 나는 승가를 버렸다. 나는 계를 버렸다. 그래서 다른 [외도] 수행자 그룹에서 범행을 닦을 것이다.’라고 말하면 승잔법을 범하게 된다는 조문이다. 비구니가 삼보를 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엄밀하게 비구니 계체(戒體)를 상실하게 된 것이지만 본 조문은 다툼 때문에 순간적인 진심(嗔心)이 일어나 우발적으로 내뱉은 말이라고 판단하여 다른 비구니들로부터 세 번 충고 받을 동안 그렇게 말한 사실을 버리면 승잔죄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내 마음에 도사린 세 마리 독사(三毒心)를 항복시키는 일이 불교 수행의 시작이자 핵심이다. 탐진치로 인해 삼업을 짓게 되고 그 업에 대한 과보로 6도를 윤회한다.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이 열반으로, 윤회를 끊음에 있으니 윤회의 수레바퀴에 들지 않으려면 과보를 받을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진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윤회의 동인(動因)이 되는 이 업이 중생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밀교에서는 중생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업을 삼업이라 하지만 부처님의 삼업은 삼밀(三密)이라 한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도리를 여실히 안다면 삼업과 삼밀이 본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그 둘의 본성이 다르다면 업을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밀이 될 수가 없으니 이는 중생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부처를 이룰 수 없으니 불교의 대의와는 묘연할 뿐이다. 여래장사상에서 모든 중생은 여래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와 유사하다 할 수 있으며 또한 식(識)을 전환해서 지혜를 얻는다는 유식사상의 전식득지(轉識得智)와도 닮아있다. 만약 오염된 식이 반야 지혜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중생은 백날 수행해야 중생을 벗어날 수 없게 되고 불교 수행의 목적이 사라진 것과 다름없다.

다툼으로 일어난 진심(嗔心)에 관한 계율 이야기를 하다가 옆길로 잠시 샌 것 같은데 부처님의 제자라면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서 해야 한다. 어리석고 우매한 사람은 성냄을 이기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심지어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에 이르는데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세간의 평범한 이치를 잘 헤아리기만 해도 홧김에 ‘자기 죽을 짓’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승가 내 쟁사는 백사갈마로 최종 해결

비구니 승잔법 불공계 여덟 번째는 발기사쟁계(發起四諍戒)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쟁(四諍)이란 언쟁(言諍), 멱쟁(覓諍), 범쟁(犯諍), 그리고 사쟁(事諍)인데 언쟁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과 계율의 해석으로 언쟁하는 것이고, 멱쟁은 범계 여부를 놓고 다투는 것이며, 범쟁은 바라이, 승잔법, 바일제 등의 죄를 범한 자에 대하여 죄의 유무를 다투는 것, 그리고 사쟁은 승가의 일상적인 일이나 생활 등으로 다투는 것을 말한다.

승가 내에서 쟁사가 발생하면 이를 소멸하기 위해 승가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를 소집하여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당사자가 납득하면 쟁사는 사라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백사갈마에 의해 만장일치로 쟁사를 해결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분쟁 해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전조와 마찬가지로 세 번의 충고를 받을 동안 불만을 버리지 않으면 승잔법을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 치사한 짓이다. 승가에서 올바른 의결 방법에 따라 내려진 결정, 혹은 준엄한 사회법의 결정을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기저기에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으니 이런 사람은 이 우주의 질서가 자기를 중심으로 유지되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동방불교대학교 교수

스리랑카 국립 켈라니야대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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