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린 비에 꽃잎이 흐트러졌다. 때아니게 바람까지 거칠다. 봄이려니 했는데 낙화가 분분하다. 분홍의 꽃잎이 마치 눈처럼 흩날리는 풍경을 보았다. 가슴이 뛴다. 절정의 시간이 찰나처럼 지나가듯 꽃의 시간은 짧고, 그 시간이 가는 것이 내내 아쉽다. 짧은 인생에서 봄의 정취를 만끽하는 일은 복되다. 다시 1년을 기다려야 봄꽃의 황홀함에 겨울 수 있다. 먼지를 뒤집어 쓴 것처럼 부였던 산이 어느 날은 연둣빛이더니 며칠 지나는 사이에 초록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눈부신 햇살을 받아 저 산은 녹음으로 치달을 것이고, 꽃 진 자리에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들판에도 초록이 출렁인다. 인적 없던 논밭에 농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씨 뿌리는 계절이다. 농가월령가 중 3월령[음력]은 봄을 맞이해 만물이 꿈틀거리는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봄날의 흥겨움에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삼월은 늦봄이니 청명 곡우 절기로다/봄날이 따뜻해져 만물이 생동하니/온갖 꽃 피어나고 새 소리 갖가지라/ … 벌레도 때를 만나 즐거워함이 사랑홉다.”(이영훈 국어연구소에서 옮겨옴)

때에 늦지 않게 농사를 준비하라는 권고도 담겨 있다. 특히 논농사를 농사 가운데 으뜸으로 치면서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한편에 모판하고 그 나머지 삶이 하니/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약한 싹 세워낼 때 어린아이 보호하듯/농사 가운데 논농사를 아무렇게나 못하리라”고 간곡하게 당부하는 듯한 어투다. 식량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

반찬으로 쓰이는 채소와 양념을 기르는 것에도 각별하다. “들농사 하는 틈에 채소농사 아니할까/울밑에 호박이요 처맛가에 박 심고/담 근처에 동아 심어 막대 세워 올려보세/무 배추 아욱 상치 고추 가지 마늘을/하나하나 나누어서 빈 땅 없이 심어놓고/ … ”

채소 가게 앞에 놓인 냉이와 쑥과 달래, 대파와 부추, 시금치, 미나리, 두릅, 곰취 등등의 봄나물이 눈길을 붙잡는다. 이즈음에 나는 나물들은 대개 쌉싸래한 맛을 지녔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것들이니 몸을 깨어나게 하는 맛이다. 그 향 또한 즐겁다. 고기반찬에 비할 바가 아니다.

3월령 중 재미있는 부분이 또 있으니 힘든 농사일을 하는 이들에게 배불리 먹게 하라는 것이다. “농부의 힘 드는 일 가래질 첫째로다/점심밥 잘 차려 때맞추어 배 불리소/일꾼의 집안식구 따라와 같이 먹세/농촌의 두터운 인심 곡식을 아낄소냐.” 그들의 식구들까지 먹이라 했으니 마음씀이 참으로 따뜻하다.

요즘의 농촌 풍경이 신산하다. 양곡관리법 개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싸움이 드세다. 민주당 주도로 양곡관리법이 개정됐는데, 주요 내용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수매토록 하는 것이다. 주곡인 쌀 생산을 유지하고, 쌀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생계를 보장해 농촌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와 여당은 쌀의 공급과잉으로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며 대통령이 이 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입장의 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이어서 갈등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5.8%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농림축산식품부 ‘양곡연도별 식량자급률’ 2018) 우리나라에서 식량은 우리들이 주로 먹는 쌀, 보리, 밀, 콩 등을 말한다.(사료용 작물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1%) 쌀의 자급률은 92.1%에 이른다. 최근에는 가공 쌀을 수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소비가 늘어나는 밀의 경우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식량의 자급은 국민 생명의 문제이다. 기후변화와 전쟁 등의 국제정세에 따라 우리의 밥상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정치하는 이들이 안정적인 식량 확보 방안을 두고 경쟁을 벌였으면 좋으련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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