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사경장’ 선정해야

<난원 정향자 박사 특별 기고>

난원 정향자 박사
난원 정향자 박사

우리나라에 불교가 유입되어 공인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이다. 유구한 불교의 역사와 함께 선조들은 오랜 세월 동안 사경(寫經)을 사성해왔다. 불교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처음에는 백지묵서로 사경하다가 목판인쇄술이 발달하자 화려하고 공이 많이 드는 장엄경, 장식경, 공덕경으로 사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사경의 3대 성지가 있다. 화엄사의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경주 불국사 석가탑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의 『금강경판경金剛經版經』이 바로 그것이다.

첫째,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사경(754.~755.)은 국보 제196호로 삼성미술관 리움(Leeum)에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유물 사경 중 연도가 가장 빠른 사경이다. 특히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최고의 사경이며 사성기가 기록되어 있어 더욱 소중한 사경이다. 이 사경은 황룡사 연기법사의 발원으로 사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최고의 귀중한 자료로 분류된다.

둘째, 경주 불국사의『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700.-751.)은 국보 제126호로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계최초 목판인쇄본으로 권자본 1축(軸) 너비 8㎝, 전체 길이 620㎝이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수리하다 발견된 사경이다.

셋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금제금강경판(金製金剛經版)』(639.- 659.)은 국보 제123호로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가로 13.7cm, 세로 14.8cm로 19매에 이른다. 경판을 좌우 두 곳에서 경첩으로 연결하였고 포개어 금띠로 묶여져 내사리함과 외사리함에 담겨 있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보수하던 중 발견되었다.

신라시대 경필가 5명이 광주 사람

이렇게 사경의 3대 성지 중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사성기에 이 경을 제작한 모든 사람들을 총망라한 인명록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경필사 11명의 명단을 공개한다.

(앞은 생략)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사경하는데 경필사(經筆寫)를 11명 선발하였다. 무진이주(武珍伊州), 즉 현재 광주 사람 아천내마(阿千奈麻), 이순한사(異純韓舍), 금이대사(今已大舍), 의칠대사(義七大舍), 효적사미(孝赤沙彌) 등 5명이다. 남원경(南原京), 즉 남원 사람 문영사미(文英沙彌), 즉효대사(卽曉大舍) 등 2명이다. 고사부리군(高沙夫里郡), 즉 고부 사람 양순내마(陽純奈麻), 인년대사(仁年大舍), 시오대사(屎烏大舍), 인즉대사(仁卽大舍) 등 4명이다. (중략)

이와 같이 사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경문인데, 이 경문을 보면 사경이 광주광역시[武珍伊州]의 다섯 사람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경필사 선발은 필사 능력이 뛰어났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사경 서체가 해서체로 유려하고 자유분방하면서 세련된 달필로 사성되었다. 이렇듯 전국에서 선발된 경필사(經筆寫) 11명 중 5명이 무진이주(武珍伊州), 즉 현재 광주광역시 출신인 점으로 미루어 그때부터 우리 광주가 예향(藝鄕)으로 불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 백지묵서『大方廣佛華嚴經』(754.~755.).  11인의 경필사 중 무진이주 5인, 남원 2인, 고사부리군 4인이라고 기록돼 있다 .
신라 백지묵서『大方廣佛華嚴經』(754.~755.).  11인의 경필사 중 무진이주 5인, 남원 2인, 고사부리군 4인이라고 기록돼 있다 .

 

‘예향’의 근원은 전통사경에 있다

이러한 기록이 우리나라 최초로 가장 영도가 높은 사경 기록물인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754.~755.) 국보 제196호 사성기에 남아 있으니 확연히 증명되는 이 역사적 사실을 그 누구도 반대하거나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 자신도 놀라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돋으면서 눈에는 기쁨의 눈물까지 맺혔다. 이 역사적인 사경의 기록물이 광주의 역사를 생생하게 담고 있어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문화재청에서 전통 사경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국가무형문화재 제141호로 김경호 사경장을 선정했다. 김경호 사경장도 광주광역시는 우리나라 사경 역사상 1700년의 성지 중의 성지라고 강조하였다.

“광주광역시를 ‘예향’이라고 부른다. 광주시민에게 어떤 연유에서 ‘예향’인가요? ‘예향’의 근원이 어디에 있나요?”하고 물으면 시민 그 누구도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훌륭한 선조들의 전통 사경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지 못한 채 그 맥이 단절됐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중앙 정부 문화재청에서 전통 사경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으니, 우리 광주광역시에서도 ‘예향’이라는 명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사경장’을 선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문화재 차원에서 전통 사경을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계승발전시켜 통일신라시대 사경의 명예를 다시 찾아 전통문화 르네상스를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난원 정향자 박사 = 원광대학교 대학원 한국문화학과에서 회화문화재보존수복학을 전공하고 2015년 「조선시대 관음경전의 사경제작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운로 175번길 15에 난원전통사경연구원을 개원하고 후학 양성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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