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일은 104주년 3ㆍ1절이다. 전국 각지에서 기념식과 함께 여러 행사가 열렸다. 정의기억연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제1585차 정기수요시위를 열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서울 용산역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비판했다. 일본의 사죄와 한국 정부의 적절한 대응도 촉구했다.

서울광장에서는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6ㆍ15남측위원회 주최로 ‘104주년 3ㆍ1절 범국민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4) 할머니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5) 할머니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눈길을 더 끈 건 범국민 대회에 앞서 열린 양금덕 할머니에 대한 평화인권훈장 수여식이다.

지난해 12월 외교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최종 후보로 추천한 양금덕 할머니의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서훈 수상을 돌연 취소했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들은 ‘일본 정부 눈치보기’라며 규탄했다. 결국 정부 대신 서울겨레하나를 비롯한 대학생ㆍ청년ㆍ시민단체들, 부산겨레하나와 부산지역대학민주동문회가 양금덕 할머니에게 평화훈장을 수여했다.

그런 가운데 KBS 2TV가 지상파 방송사중 유일하게 특선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년 2월 27일 개봉)를 3ㆍ1절 당일 방송했다. 개봉 6개월도 안된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2019년 광복절 특선영화로 방송한 바 있는 MBC는 3ㆍ1절 다음날 ‘밀정’을 내보냈다. 방송사 나름 3ㆍ1절의 숭고한 의미를 기린 셈이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흑백영화다. 집에서 편하게 보는 것조차도 죄스러울 만큼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일제(日帝)의 만행을 다룬 어느 영화보다도 먹먹한 아픔을 진하게 안겨준다. 유관순은 두 팔 묶이고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진 채이거나 발에 채운 족쇄, 그리고 손톱 밑을 송곳으로 찔러대다 결국 뽑아버리기까지 하는 일제의 잔혹한 고문을 당한다.

그런 고문을 당하면서도 “만세 1주년인데 빨래 널고 있을 순 없잖아요”라며 끝까지 항거하는 유관순이다. 그런 유관순이 10대 소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놀랍고 슬프다. 놀랍고 슬픈 건 104주년을 맞은 지금도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일본을 찾는 관광객은 해마다 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은 149만 7,300명이다. 그 중 56만 5,200명이 한국인이다. 전체 1위로 38%에 달하는수치다. 이는 2위 대만(25만 9,300명), 3위 홍콩(15만 9,000명)에 비해 2~3배 이상 많은 것이다. 일본내 우익 진영에서 “그토록 대단했던 반일의 열기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는 빈정거림이 나올 정도다.

그뿐이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행여 뒤질세라 몰려든 관객들은 또 어떤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3월 12일 현재 관객 수는 400만 6846명이다. 3ㆍ1절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본 관객만 70,403명이다. 휴일이라곤 하나 평일보다 2배쯤 늘어난 수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나 ‘아바타’ 시리즈가 천만영화가 된 걸 생각하면 400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그야말로 새 발의 피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진행된 ‘더 퍼스트 슬램덩크’ 팝업스토어는 원작과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서다.

또한 공식 MD 상품은 연일 품절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원작과 더불어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를 가늠케 하는 관련상품 판매 소식인데, “원작 팬들에게는 추억을 자극하고, MZ 세대들에게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귀추가 주목된다”는 전망까지 있을 정도다.

아무리 국적을 가리지 않는 영화보기라지만, 연전에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독도라든가 위안부 문제 등 그동안 있어왔던 반일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NO재팬’이 벌어졌던 걸 떠올려보면 나로선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104주년 3ㆍ1절이다.

-방송ㆍ영화ㆍ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