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21-춘분

원철 스님

‘춘분엔 흐린 날씨가 좋다’ 속설

새해 첫 번째 토끼날은 상묘일

‘본생경’에 부처님 전생담 있어

콩을 볶아 먹으면 벌레들 줄어

강경희작.
강경희작.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은 24절기의 네 번째 절기이다. 춘분은 봄 춘(春)과 ‘나눌 분(分)이라는 한자어로 ’봄을 나눈다‘는 뜻이 있다. 농가에서는 춘분이 되면 한해 농사를 점쳐 보기도 하는데 동쪽에 해가 뜰 때 푸른 기운이 감도는 구름이 있으면 그해 보리농사가 풍년이고 그러나 이런 푸른 기운이 돌지 않고 구름이 없으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역병이 돈다고 하였으며 춘분에 비가 오면 환자가 드물다고 하였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춘분에는 맑고 쾌청한 날씨보다 구름이 많이 끼고 해가 잘 보이지 않는 흐린 날씨가 좋다고 믿었다.

국보 31호인 첨성대(瞻星臺)는 춘분이 되면 태양이 남중할 때 정 중앙에 뚫린 네모난 창문에 태양광이 창문 속까지 완전히 비쳐 춘분 분점(分點)을 정확히 알려준다. 하지와 동지 때는 완전히 사라지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왕조실록에는 춘분을 기준으로 조석 두 끼를 먹던 밥을 세끼로 먹기 시작하고, 추분(秋分)이 되면 다시 두 끼 밥으로 해가 짧은 겨울 동안 세 끼 밥을 두 끼로 줄여 양식을 아꼈다는 기록도 있다.

묘월은 오행 상 목이며 색으로는 청색이고 맛으로는 신맛이다. 목은 오장 중 간(肝)에 해당하니 절기에 따라 올바르게 생활하는 방법이 있으니 《동의보감》에서 말하길 인간의 몸은 자연과 닮은 꼴이라 하였다. 목은 성장하는 기운이니 천지간의 생기가 발동하여 만물이 소생하고 번창하는 계절이다. 인시(寅時)에 일어나서 묘시(卯時)에 하루 준비를 시작하고 진시(辰時)에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문화숙작.
문화숙작.

‘묘월(卯月) 춘분(春分)’ ‘유월(酉月) 추분(秋分)’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봄과 가을, 시작과 결실의 계절, 동쪽과 서쪽, 청색과 백색, 신맛과 매운맛을 상징한다. ‘오월(午月) 하지(夏至)’ ‘자월(子月) 동지(冬至)’ 역시 마주보고 있다. 여름과 겨울 활동과 정지, 남쪽과 북쪽, 적색과 흑색 쓴맛과 짠맛을 상징한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새해 들어 첫 번째로 맞는 토끼날 묘일을 상묘일(上卯日)이라 하는데 상묘일의 금기는 토끼의 방정맞고 경망스런 모습과 관련된 생태적인 속성과 함께 십이지의 넷째 지지(地支)인 묘(卯)의 속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남자가 먼저 대문 열기’, ‘동쪽을 향해 일을 하거나 소변을 보지 않는 일’, ‘나무로 만든 그릇을 들이지 않는 일’, ‘처음 짠 베를 청색으로 물들이는 일’ 등이 묘의 속성과 관계가 있다. 특히 가리는 일 중 ‘남자가 먼저 대문을 열어야 그해 가운(家運)이 번창한다’는 것은 ‘묘(卯)’자 상형이 ‘개문(開門)의 형상’, 곧 대문을 좌우로 연 모양을 나타낸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부정(不淨)한 대상으로 인식되는 여자가 복이 들어오는 통로인 대문을 열면 한 해가 불길하다고 믿어 특히 금기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해서 좋은 일로 첫 토끼날에 톳실 또는 명실을 짜는 것은 토끼와 실이 일반적으로 수명장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초 묘일(卯日)에 새로 뽑은 실을 톳실 또는 명실[命絲]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이날 바느질을 하였으며 베틀에 앉아 조금씩이라도 베를 짰는데, 이러한 풍속은 화전(火田)을 했던 강원도에 많이 나타난다. 이 실을 차고 다니거나 옷을 지어 입으면 수명이 길어지고 재앙을 물리친다고 하여 남녀 모두 명주실을 쪽염색하여 청색으로 물들여 팔에 감거나 옷고름에 달았으며, 돌쩌귀에 걸어두기도 하였다.

붓염.
붓염.

 

선행공덕을 강조한 부처님의 전생이야기 《본생경(本生經)》은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기 이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수행자로서 닦아오신 여러 생(生)의 얘기를 모아놓은 것이다. 《본생경(本生經, Jataka)》에는 ‘토끼의 전생이야기’와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불하시기 이전에 보살이었던 기간 동안 어떤 때는 국왕이나 상인 또는 도둑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토끼나 원숭이 등의 몸을 받고 태어나서 언제나 한결같은 선행과 덕행을 베풀면서 남을 위하여 봉사하였다는 전생담 이야기가 담겨 있다. ‘토끼의 전생이야기’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토끼의 몸을 받고 수달과 들개 그리고 원숭이와 같이 살던 때 포살일(布薩日 ; 수행자들이 보름마다 한 번씩 모여 잘못에 대하여 참회하는 행사)을 맞이하여 각자 계를 지키고 보시를 하였다. 수달은 물고기를, 들개는 고깃덩어리를, 원숭이는 망고를 따 와서 보시를 하였다. 그러나 토끼는 탁발승에게 아무것도 보시할 것이 없었으니 토끼는 타오르는 장작불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그 불은 천신이 탁발승으로 변장하여 토끼의 보살정신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토끼는 털끝 하나도 타지 않았으며 천신은 토끼의 희생적인 보시정신을 기리기 위해 달 속에다가 토끼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전래동화의 달 속의 토끼이야기 역시 여기서 파생되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수달은 견문(見聞)이 많고 기억력이 좋은 아난, 들개는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위해 애를 쓴 목련존자, 원숭이는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는 사리불, 토끼는 부처님의 전생을 가리키고 있다.

옻칠염색.
옻칠염색.

 

윤석중 선생님의 동시집에 보면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하는것처럼 토끼의 특징은 ‘아침형 인간이 많고 부지런하다’고 해석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기운이 있어 호기심이 많고 시작은 많지만 마무리가 부족하다. 늘 의욕이 넘친다. ‘토끼띠가 여름에 태어나면 운이 좋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쪽물만들기.
쪽물만들기.

명리학에서 도화살이 있네 하는 도화가 바로 자, 오, 묘, 유(子, 午, 卯, 酉) 정북, 정남, 정동, 정서 사방에 들어 있다. 쥐, 말, 토끼 닭이 도화라고 하는 것이다. 도화살이 있네 없네 하며 도화살을 무조건 좋네, 나쁘네 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묘월의 봄 묘도화의 느낌은 봄의 기운이 화사하고 밝고 귀엽고 아기자기하며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들과 새순들 정신없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계절로 아름다운 계절이다. 도화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긍정보다는 부정의 의미로 표현되다 보니 도화살이 있네 하면 부정의 느낌으로 폄하되기 쉬운데 에너지 넘치고 개성과 매력을 어필하는 자기 피알 시대인 요즈음 세태에 어울린다고 볼 수 있겠다. 분홍색의 복숭아꽃처럼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것이다.

토끼를 상징하는 묘(卯)는 새싹이 덮어쓴 흙을 밀치고 나오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한해 농사의 본격적인 시작과 관련이 있다. 토끼를 만물의 생장, 번창, 풍요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한순지작.
한순지작.

 

춘분에는 콩을 볶아 먹었는데 콩을 볶아 먹으면 해로운 벌레가 줄어들고 쥐와 새들이 사라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콩을 볶으면서 노래를 부르며 볶았다.

볶아라 볶아라 달달 볶아라

볶아라 볶아라 달달 볶아라

볶아라 볶아라 콩알 볶아라

볶아라 볶아라 쥐알 볶아라

볶아라 볶아라 새알 볶아라

볶아라 볶아라 굼벵이 볶아라

앞뜰에서 볶아라 뒷뜰에서 볶아라

‘꽃샘 추위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춘분이다. 아침저녁 산사에 부는 바람은 아직 차고 시리기만 한데 봄 햇살 가득 머금은 하늘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싱그러운 봄볕 마음껏 쬐며 산사의 바람결에 실려 오는 꽃 향기 맡으며 봄을 느껴본다.

(사)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 주지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