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이야기】

29. 홍차의 나라가 된 영국

정략 결혼으로 ‘차’와 시절 인연

성인 인구 80% 이상이 차 마셔

홍차는 상품 넘어 영국의 상징

영국 왕실의 협조는 당연한 일

무향차를 우리는 광양의 제다명인 백남기.
무향차를 우리는 광양의 제다명인 백남기.

 

1662년에 영국 해군력이 필요했던 포르투갈은 캐서린 브라간자(Catherine Braganza) 공주를 영국 왕 찰스 2세(Charles Ⅱ)와 정략 결혼시킨다. 여기서 찰스 2세는 맞다. 지금 엘리자베스 2세의 황태자로 고 다이애나 비의 남편, 찰스 3세의 ‘선임’격으로 약 360년 즉 6갑을 넘어서 계승한 왕호가 맞다.

여하튼, 브라간자 공주는 결혼 지참금으로 영국이 해군력을 안빌려줄 수 없게 인도 서해안의 항구도시 봄베이(Bombay)라는 통큰 선물과 함께 자신이 마실 차를 잊지 않고 가져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정략 결혼 하나만으로 영국은 ‘차’와 거대한 시절 인연을 맺게 된다. 왜냐하면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이때에 드디어 봄베이를 발판으로 인도의 거점을 얻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확장을 거듭하여 영국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인도 북동 아삼 지역을 영국 국민을 위한 홍차 대량 생산기지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성인 인구의 80% 이상이 차를 마시며, 50% 이상은 매일 마신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조치(Lock down)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탓이다. 불안하고 언젠가 자신도 걸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과 위안’과 ‘수분섭취, 그리고 친구·가족 간의 교류를 위해서’ 결국 자주 먹던 홍차를 더 마시기 시작했다. 그 결과, 홍차 판매량이 약 5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사실 목을 보호하기 위해 60도 정도의 따스한 물을 마시며 체온을 높이는 일은 면역력을 높이는 행위로 비단 코로나뿐만 아니라 감기나 독감 등에도 좋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홍차아카데미의 문기영 원장은 태국인 유학생 키티 차 상마니(Kitti Cha Sangmanee)에 주목한다. 키티는 1983년에 프랑스의 마리아주 프레르(Mariage Frères)를 인수한 후 마르코 폴로를 포함하여 수많은 가향차를 직접 만들어 대박을 쳤다. 어느 날 갑자기 ‘홍차’의 역사가 짧은 프랑스를 를 넘어 홍차의 나라 영국 유수의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프레르는 이제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그런 브랜드 가치를 가진다.

이런 성공의 비결은 키티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주는 대로 ‘홍차’를 마시던 시절에 품종, 떼루아, 가공방법 등 차의 맛과 향의 차별성을 중요하게 여길 시대를 예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명품 패션처럼 홍차의 고급화와 다양화를 도모한 결과, 불과 40년이 지난 지금은 영국의 포트넘앤메이슨, 해롯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유수의 차 회사로 유명해졌다.

차를 우리는 모습을 필자(사진 오른쪽)가 바라보고 있다.
차를 우리는 모습을 필자(사진 오른쪽)가 바라보고 있다.

 

필자가 2021년 퐁피두센터에 들렀다가 파리의 프레르를 찾았다. 의외로 구석진 장소에 작은 가게를 가진 본점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물론 필자 역시 수백 개의 차 메뉴에서 뭐를 마실까 고르느라 매우 즐거웠다. 그저 전시용 ‘틴’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차통에 다 가득 차 있는 ‘차’향기를 맡는 것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차인)으로서는 정말 지극히 행복한 순간이었다. 태국인 젊은이 한 명이 프랑스의 홍차문화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올린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영국 차 회사들은 왕실의 이벤트를 홍차 마케팅에 잘 활용해 왔다. 거꾸로 보면 왕실에서 차회사들을 잘 활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도 싶다. 불감청고소원이라고 같이 하자고 하고 싶은데 먼저 제안을 한 것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귀족들이 좋아하고 중산층을 넘어 서민층까지 대중화된 ‘홍차’에 숟가락 하나 얹어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왕실이든 민간기업인 회사든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홍차’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귀족 아니 영국의 상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1907년에 창립한 포트넘앤메이슨은 백화점 본점 4층에 있는 애프터눈티로 유명한 세인트 제임스 레스트런트를 2012년 재오픈하면서 다이아몬드 주빌리 티 살롱(The Diamond Jubilee Tea Salon)이라고 명명했다. 오픈 행사에 온 엘리자베스 여왕이 포트넘을 상징하는 ‘민트색’의 원피스를 입은 것이 놀랍기만 하다. 세계 굴지의 홍차 회사 즉 넘버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회사와 영국 황실의 협조는 당연한 것이도 하다. 다만 포트넘이 원하는 드레스코드까지 소화한 여왕의 모습은 정말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그런 행사는 영국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황실 추종자에게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여왕과 겸상은 불가하지만, 여왕이 앉았던 자리에 시간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마주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방문한 2020년. 몇 달 전에 이미 예약이 찼지만 하루 전에 취소된 자리가 있어서 어렵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최고급 애프터눈티의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의 맛은 여왕과 함께하는 듯한 잊히지 않을 감동을 손님들에게 주고 있었다. 다른 애프터눈티도 먹어 봤지만 다들 맛있었다. 그럼에도 포트넘의 티 살롱이 유명세를 탄 것은 역시 왕실마케팅 덕이 아닐까 싶다. 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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