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존의 근원을 파헤치려는 작가의 치열한 고투 드러내

 

염주

유응오 지음

백조

15,000원

 

 

 

 

 

 

《염주》는 《하루코의 봄》 출간 이후 6여 년 만에 선보이는 유응오 소설가의 장편소설이다.

원경 스님과 한산 스님 등 승려들이 등장하고, 평택 만기사, 해원탑 등 사찰공간에서 사건이 전개되고, 《신묘장구대다라니》, 《반야심경》 등 불교 경전이 화소(話素)로 활용되어 서사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불교소설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이 지향하는 이상세계는 미륵 세상, 화엄 세상, 평등 세상이라는 점에서 이색적이면서도 뛰어난 불교소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일제강점기, 해방, 분단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시공간에서 조선노동당과 남로당에서 활동한 박헌영, 이현상, 김삼룡, 이주하 등 공산주의자들과 주세죽, 원경 스님, 비비안나 박 등 박헌영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또한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과 그 주변 인물들이 생생하게 형상화되면서 역사적 구체성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역사소설에 값한다.

이 소설에서 중심축을 이루는 주인공들은 역사에 실재하는 인물이다. 단순히 어떤 특정 시기에 존재하는 역사의 피상적인 인명사전적 인물이 아니라 이 땅에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존재를 바쳤던 인물이다. 이들이 추구했던 이상세계는 좁게는 반외세와 분단 극복일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모든 백성이 행복한 민주적이고 평등한 세상일 것이다. 이 역시 정치소설이 추구하는 최종 귀결점이라고 할 때 《염주》는 또한 정치소설일 수밖에 없다.

《염주》는 박헌영의 아들인 원경 스님과 빨치산 토벌대장인 차일혁의 교차 시점으로 구성돼 있는 팩션(Faction) 소설이다. 원경 스님의 시점에서는 박헌영, 이현상, 김상룡, 이주하, 주세죽 등 남북 양측에서 버림받은 남로당계 공산주의자들이 등장하고, 차일혁의 시점에서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빨치산과 토벌대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1950여 년부터 2020여 년까지를 유장한 시대 배경으로 하는 《염주》는 시간적 배경만큼이나 공간적 배경도 웅장하다. 남북한은 물론이고 모스크바, 크질오르다 유형지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신냉전 체제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독자들에게 미래의 한반도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70~80여 년 전 좌우로 반목했던 한반도의 이야기가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시대의 공업(共業)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염주》는 과거사의 일화들을 통해 이념 논쟁이 뜨거웠던 한국 근대사를 간접 경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엄(華嚴)의 역사’와 ‘화쟁(和諍)의 정치’라는 미래 시대의 담론을 숙고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용락 시인(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은 추천사에서 “이전 시기의 빨치산 문학이나 정치소설이 지나치게 고발적이거나 정파 투쟁적 관점에 빠져서 메마른 몸피를 보였다면 《염주》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여 인간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불교라는 소재를 추가하여 소설의 디테일을 더 생동감 있고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김용락 시인은 이어 “《염주》에 나오는 많은 인간 군상들의 헌신은 현재 한국 소설계가 목도하고 있는 자본주의 일상의 퇴폐적이고 쇄말적인 인간상과 대비된다.”며 “작가가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공동체의 선(善)을 지향하고 존재의 근원을 끝까지 탐구하려는 화쟁과 화엄의 세계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최승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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