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소설집 《검은 입 흰 귀》와 장편소설 《염주》를 출간했다. 소설집에 실린 <금어록(金魚錄)>의 주인공 명정 스님은 벗이라곤 붓밖에 없는 화승(畵僧)이다.

“불화를 그릴 때는 꿈속에서도 불보살님을 만났다. 꿈속에서 명정은 불화를 그리다가 불화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영산회상도 속으로, 아미타후불도 속으로, 비로자나후불도 속으로, 약사여래후불도 속으로, 지장시왕도 속으로, 관세음보살도 속으로 들어가 자신은 사리지고, 그리하여 종내는 그림만이 오롯하게 남게 됐다. 단청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꿈을 꿀 때마다 명정은 단청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위 문장에서 눈치 빠른 독자는 짐작했겠지만 명정 스님이라는 캐릭터의 모델은 만봉 스님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 명정 스님의 일대기가 만봉 스님의 행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출간된 책에 실린 <금어록>을 다시 읽으면서 필자는 태고종이 다른 종단과 비교했을 때 불교예술에 대해서만큼은 재산권 내지는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였다.

돌이켜보건대, 해방 이후 불교사에 가장 큰 사건은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의 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조계종과 태고종의 분규에 대해 조계종은 정화, 태고종은 법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차는 각기 다른 시각의 입장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차의 시비를 떠나서 사실 관계만 보자면 한국의 사법부가 1,600여 년의 한국불교의 정통성이 조계종에게 있음을 인정했기에 조계종의 출범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조계종의 출범은 한국의 불교문화재와 전통사찰의 소유권이 조계종에 귀속돼 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고종은 불교의 무형문화재, 즉, 불교예술에 대해서만큼은 조계종보다 우위를 선점해왔던 게 주지의 사실이다. 태고종이 선점하고 있는 대표적인 불교예술은 만봉 스님으로 대표되는 불화와 단청, 송암 스님으로 대표되는 범패와 짓소리, 봉원사로 대표되는 영산재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불교신문>이 신춘문예 제도를 실시한 것은 제법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한국불교신문>신춘문예의 당선작들을 보면 중앙일간지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기실 태고종이 만해 한용운 스님에 대한 추모 사업을 하지 않은 것은 크나큰 패착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태고종은 적지 않은 문화재와 전통사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정비 및 주변정비, 전통사찰 주변정비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는 말씀대로 태고종이 예전처럼 불교예술의 장자(長子) 종단임을 자부하려면 불교예술 콘텐츠 개발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공 지능, 사물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모바일 등 지능정보기술이 기존 산업에 결합돼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는 3차 산업 혁명의 패러다임을 넘어서 초연결(hyperconnectivity)과 초지능(superintelligence)의 특징으로 인해 기존 산업 보다 더 넓은 범위(scope)에 더 빠른 속도(velocity)로 크게 영향(impact)을 끼친다는 4차 산업 혁명의 패러다임이 대두된 지 오래다.

이런 정보화의 발전 추이로 인해 점차 주목을 받는 것이 ‘메타버스(Metaverse)’이다. 1992년 미국의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 등장한 용어인 메타버스가 인류의 새로운 산업문화로 떠오른 데는 초고속, 초연결, 초저지연의 5G 상용화에 따른 정보통신기술 발달과 코로나19 팬더믹에 따른 비대면 추세 가속화가 영향을 끼쳤다.

메타버스의 특징은 가상현실(VR)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켜 증강현실(AR),혼합현실(MR)을 구현함으로써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태고종은 향후 메타버스의 특징을 불교예술과 접목하는 방법을 골몰해야 할 것이다. 다행인 것은 태고종에는 적지 않은 전통사찰과 불교문화재, 특히, 불교 무형문화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태고종의 전통사찰들을 3차원 데이터로 제작한 뒤 그 데이터를 토대로 가상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또한, 화승인 솔거와 담징의 이야기를 태고종 소속 화승과 연결시키거나 불교전통 음악의 이야기와 태고종 소속 범패승과 연결시켜 VR콘텐츠로 제작한다면 그 결과물의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이러한 메타버스의 콘텐츠로 제작된 불교문화는 체험자들에게 불교사상에 입각한 교훈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생과 현생과 내생이 혼재하는 시공간에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색다른 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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