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인간중심적인 편향성을 띨 가능성이 있다. 야생동물의 권리는 흔히 부차적인 중요성을 부여받곤 한다. 그러나 우주에서 인간과 동물은 동등한 위치에 있다.”

“우리가 절멸 위기종을 지키고자 힘쓰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상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익이 자동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않으며, 인간은 제 이익과 무관하게 비인간 생명체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위에서 인용한 문장은 생태주의자의 주장이 아니다.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의 권고도 아니다. 영성활동가나 이상주의자의 생각도 아니다. 인도 대법원의 판결문 중 일부다. 인도 대법원은 비인간 동물과 자연의 권리를 옹호하는 판결을 많이 내리는 나라다. 어느 나라든 대법원의 판결은 하급심을 규정하며, 그 나라의 현재와 미래의 지향을 담고 있다. 사회적 규범을 제시하고 윤리 수준의 잣대로 작용한다.

인도 대법원의 위와 같은 판결은 악명 높은 인도의 대기오염과 뚜렷이 대비된다. 델리는 세계에서 가장 공기질이 나쁜 도시로 꼽힌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에너지정책연구소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인구의 63% 이상이 인도가 자체적으로 정한 대기질 안전 기준을 초과하는 지역에 살고 있다.

인도는 또 경찰의 폭력, 여성에 대한 성·노동 착취, 관습적인 계급의 유지 등 인권면에서도 종종 뉴스거리가 되곤 한다. 이런 인도에서 위와 같은 판결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인권의 가치가 외면받고 있는데, 미래가치에 주목하는 모순된 행태라는 비판이 나올만하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나쁘다는 이유로 미래의 가치를 외면하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인도 대법원의 판결은 행정부와 입법부에 대해 자연의 가치를 지키라는 강력한 권고가 아닐까.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낯설다.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청구에 대해 한국의 대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고 언론에서도 주목했던 이유는 도롱뇽을 소송의 제기자로 내세운 데 있었다. 대법원은 “자연물인 도롱뇽은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라고 밝혔다. 2006년 6월의 일이었는데, 한국에서의 자연물의 권리는 그때 머물러 있다.

많은 나라에서는 자연물의 권리를 점차 인정하고 있다. 인도 외에도 미국, 뉴질랜드, 에콰도르,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에서 많은 판례가 쌓이고 있다. 미국의 환경변호사인 데이비드 보이드가 2017년 펴낸 『자연의 권리』에서 수많은 사례를 알려주고 있다.(이 책은 고유서가에서 2020년 우리글로 번역, 출판. 부제는 ‘세계의 운명이 걸린 법률 혁명’. 데이비드는 2018년부터 유엔 인권·환경 특별보고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국립공원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 새로운 법, ‘테 우레웨라법’을 2014년에 제정했다. 뉴질랜드 정부와 이 지역에 사는 투호에족과의 협의의 결과물이다. 원시림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테 우레웨라는 1954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역인데, 이 법으로써 정부의 관리영역에서 벗어났다. 이 법이 획기적인 이유는, 테 우레웨라는 정부는 물론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테 우레웨라 스스로가 자신을 소유한다. 그 권리는 테 우레웨라이사회가 대행한다. 이사회는 투호에족이 임명하는 6인과 정부 측 3인으로 구성되었다.

자연물은 인간이 개발, 이용하는 자원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존재이며, 인간은 그런 자연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그러니 자연은 인간에게 고마운 존재이며, 우리가 우리를 지키듯이 보듬어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삶을 지속 가능케 하며 풍요롭게 하는 원천임이 분명하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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