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20-경칩
원철 스님

동면의 개구리가 깨어나는 날
고로쇠수액 맛 가장 좋은 시기
묘시는 활동을 준비하는 시간
생쪽염색, 초보자도 쉽게 접근

김미옥작.
김미옥작.

 

24절기는 각각 어떤 계절 또는 날씨의 변화 등을 알려주는 분기점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한 해의 절기 중 세 번째인 경칩(驚蟄)은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절기로서 이 무렵에 옛사람들은 첫 번째 천둥 치고 그 소리에 놀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농촌에서는 산이나 들판의 물이 괴어있는 곳에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나 도롱뇽 등이 낳은 알을 건져다 보양식으로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또 이날은 흙이 가장 길(吉, 복이 있는)한 날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집의 담장을 보수하거나 외벽에 흙을 바르는 작업을 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보리싹이 나는 시기로 보리싹이 난 모양으로 보고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경칩과 관련한 속담에 보면 경칩이 되면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와 벌레 등이 짝을 찾기 위해서 울음을 내기 시작하는데 개구리, 곤충, 동물 등이 입을 열고 울기 시작하는 것처럼 

문양염.
문양염.

그동안 꾹 입을 다물고 말이 없던 사람이 말문을 열었을 때 ‘경칩 지난 게로군’이라고 표현한다. 옛날엔 경칩 무렵이 고로쇠수액을 채취하는 때여서 경칩에 나오는 고로쇠수액이 가장 좋은 맛을 내는 시기라 농부들이 경칩에 고로쇠수액을 마시며 그해의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흐리거나 비 오는 날씨엔 단 한 방울도 안 나온다는 고로쇠 수액인데, 한 방울 한 방울 똑똑 떨어지는 수액을 모아 마시니 자연이 내어주는 선물인 것이다. 똑똑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던 수액도 나뭇가지의 새순이 나올 무렵이면 수액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고로쇠물의 효능을 따져보 무엇보다 ‘뼈에 좋은’ 천연음료 라고 알려져 있어 고로쇠 ‘골리수(骨利樹)’라고도 불린다. 골리수는 이름 그대로 ‘뼈에 좋은 나무’이지만 소화작용에도 아주 좋고 위장병에도 좋다고 하여 경칩 무렵이면 고로쇠 수액을 먹었다. 이처럼 경칩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움츠려 지냈던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력이 소생하는 절기이다.

박현종작.
박현종작.

 

경칩은 놀랄경(驚)과 깨어날칩(蟄)이 합해진 단어다. 경칩을 한자로 풀어보면 개구리가 깨어나는 날이다. 불가(佛家)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어느 날 개구리 한 마리가 부처께서 법(法)을 설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 연못에서 나와 풀숲으로 가던 중 지나가던 행인들의 발길에 깔려 죽고 말았다. 이윽고 개구리의 육체와 영혼은 분리되었고 그 영혼은 저승으로 가게 되었던바, 잠시 후 눈을 떠 보니 자신이 새로 태어난 곳이 불국토(佛國土) 정상에 위치한 도리천이었다는 것이다. 전생에 축생이었던 자신이 그리된 이유를 몰라 의아해했는데, 자신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기에 이러한 과보를 받은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것이 곧 그 유명한 《경률이상(經律異相)》에 수록된 개구리에 관한 설화이다. 《경률이상(經律異相)》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남조의 양나라 승려 보창이 무제(武帝)의 명을 받아 여러 불전에 등장하는 비유나 전생담 등 신비한 고사를 뽑아 22부로 나눠 50권으로 편찬한 책이다.

서순옥작.
서순옥작.

 

음력 2월은 묘월(卯月)이다. 만물이 활발하게 자라면서 새싹들이 활발하게 파란 들판을 채워가는 시기다. 토끼를 상징하는 묘월 묘목은 음의 기운이 충만한 겨울에서 봄의 시작 인월 목의 1월에서 균형을 이루고 양의 기운인 따스함이 음의 기운을 넘어서는 토끼의 달이다. 토끼 하면 먼저 긴 귀, 귀엽고 예쁜 표정의 눈, 길쭉한 두 쌍의 앞니, 짤막한 꼬리, 갈라진 입술, 긴 수염의 모습이 연상된다.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훨씬 길어 깡총깡총 뛰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힘찬 에너지가 넘친다.

토끼는 우리 민족과 인연이 깊으며 사랑 또한 많이 받아온 동물이다. 푸른하늘 은하수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에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이야기, 거북이 등에 타고 용궁에 갔다가 꾀를 내어 위기를 탈출하는 영리한 토끼 이야기, 거북이와 경주를 하며 자만에 빠진 토끼 이야기 등 오래전부터 이야기거리로 많이 등장한다. 토끼의 지혜를 보여주는 고사성어 중 대표적인 것이 ‘교토삼굴(狡兎三窟)’이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 놓는다’는 말이다.

이경호작.
이경호작.

묘월(卯月)의 색은 청색이며 방향은 동쪽이다. 오전 5시~오전 7시를 묘시라 한다. 하루 일과 중 활동할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기 사방으로 가득 찬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시기이므로 욕망과 야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창 봄의 기운이 다가오니 여기저기 돋아나는 쌔삭들은 분주하기 그지없고 새롭게 돋아나는 기운들은 창조적으로 꾸미고 예술적이기도 하다. 묘월의 토끼처럼 왕성한 활동력을 발산하기도 하지만 너무 과하면 지속성은 없다. 토끼는 깡충깡충 잘 뛰어다니고 움직임이 많으며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같고, 온순해 보이며 뭔가 불안해하는 모습도 보인다. 우왕좌왕 허둥지둥 대는 모습이 정신없어 보이기도 하고 금방 잠들고 금방 깨기도 하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토끼의 모습들과 상징성이 묘월의 청색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청색을 염색하는 것은 쪽으로 염색한다 하였으니 쪽 염색법에 대해 알아보자. 묘월의 청색은 아직 춘분이 안되었으니 오방정색의 청색에 약간은 못 미치는 청색으로 보면 되겠다. 묘월의 문턱에 들어선 계절이니 쪽염색으로만 청색을 만들면 되겠다. 춘분의 쪽염색은 오방정색 중 청색으로 보면 되겠지만 경칩의 청색은 정색보다는 약간 못 미치는 70%의 청색으로 본다. 파란 청색도 진하고 연한 정도에 따라 염색방법이 달라지니 쪽염색은 쪽물에 담갔다 뺏다 하는 횟수에 따라 수고로움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한 청색을 만든다. 횟수와 상관없이 쪽물을 진하게 풀어 한 번에 진한 청색을 염색 하기도 하지만 반복하는 것이 좀 더 좋은 색을 만들어 낸다.

이미영작.
이미영작.

생쪽잎을 믹서에 갈아서 차가운 얼음물에 염색하는 방법, 생쪽잎을 삶아서 발효시켜서 하는 염색방법, 생쪽잎을 삭혀서 니람(泥藍)을 만들어 발효시켜서 하는 염색방법, 쪽분말을 발효시켜서 하는 방법, 화학식으로 환원시켜 염색하는 방법 등이 있으며, 쪽잎 건조 후 병람(餠藍) 형태로 만들어 염색하는 방법, 일본식 스쿠모 형태로 하는 염색법 등 쪽을 염색하여 청색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많이 하는 염색방법은 생쪽염색과 니람, 건람으로 하는 염색법이다. 생쪽 염색 시 물의 온도에 따라 색감의 차이가 생기니 이때 차가운 온도로 염색해야 가장 맑은 청색을 만날 수 있으며 채도가 떨어지는 청색이 좋으면 그냥 미지근한 물에 염색하여도 상관없다. 생쪽염색은 초보자도 쉽게 한번 보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염색 법이다. 오랜 시간 염색을 하면서도 어렵게 생각하는 염색이 전통발효 쪽염색이다. 알고 나면 쉬운데 알면서도 안되는 것이 변수가 많은 전통발효 쪽염색인 것이다.

이영자작.
이영자작.

 

염색하는 사람들이라면 전통 쪽염색에 부딪혀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활성화되어 쪽 농사도 지으며 연구하는 사람도 많아졌으니 어렵게 생각하던 쪽염색 우리의 전통색을 찿아 가는 길은 구도자의 길을 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겨울잠 자던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에 새싹처럼 싱그러운 봄 향기 가득한 경칩(驚蟄)을 맞이하여, 봄의 기운을 듬뿍 받은 매화향기가 불어오는 바람에 코끝을 스친다.

(사)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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