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보살이 “입춘법회 때 주셨던 휴대폰 보조배터리가 혹시 남아 있느냐”고 물었다. 몹시 떨리는 목소리였다. 왜냐 물으니 튀르키예로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해마다 마산 신도가 휴대폰 보조배터리를 한 박스씩 보내주는데, 올해는 다행히 많이 남아 있다 하니 아이처럼 기뻐한다. 길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진 시체 사이사이로 울부짖는 가족들, 영하 10도의 혹한 속에 사상자를 찾는 구조요원들의 기사가 매일 보도되니, 그 참담함에 목소리라도 확인되고 소통이 된다면 작은 것이지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필자도 작년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산 하나를 잃었다. 십 수 년 동안 절을 돌봐줄 뿐만 아니라 여러 해 큰스님 절을 수리해 주었으며 스님들 행사도 무보시로 도와주었던 동생 은규는, 말은 없지만 깊은 눈빛에 사려심도 깊어서 신도들이 다 좋아했다. 죽기 얼마 전부터는 내가 다니던 병원 식구들에게 밥을 사주라 하고, 도성 스님 학비와 치과 원장님, 잘해주었던 보살들에게도 연금카드를 내밀며 맛있는 거 사주라고 당부했다. 폐기종으로 숨을 잘 못 쉬면서도 병원 가기를 거부했고 밤마다 통증에 소리 지르면서도, 자신이 죽으면 우리 스님 누가 돌봐 주냐고 걱정으로 깊은 숨을 몰아쉬곤 했었다.

필자 역시 그가 없을 두려움에 밤마다 몸을 떨었다. 저승가기 전 깨끗하게 씻고 가야 엄마가 좋아한다 했더니 곡기 끊기 사흘, 세상 뜨기 두 시간 전에 기다시피 해 욕조에 들어갔다. 그러나 쇄진한 기운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을 처사가 발견하고, “스님 스님!” 하고 소리치길래 쫓아가 둘이 욕조에서 건져내 이불에 둘둘 말아 자리에 눕히며 말했다.
“은규야, 이제 엄마가 좋아하시겠다. 깨끗하게 잘 씻어서…”
“응… 응…”
필자는 차갑게 식어가는 은규의 뺨에 수없이 입을 맞추며 뜨거운 눈물로 그의 얼굴을 데워줬다. 새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기고 얼굴도 말갛게 닦아 놓으니 그림처럼 예뻐서 그 모습을 잊지 않으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자는 듯 고요히 누워 있는 모습이 정말 단정하고 정갈해 자꾸만 껴안아 주고 싶었다. 죽은 사람도 이렇게 정답고 좋은 줄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없다. 바람이 있다면 은규가 봄날의 따스한 햇살로 필자를 다시 찾아와 실바람처럼 귓가에 맴돌면 좋겠다. 그러면 내 서럽고도 깊은 슬픔도 조금은 옅어지지 않으려나….

튀르키예 지진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도 언젠가는 그들 가족에게 햇살처럼 되돌아가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시신 위에 비석 대신 벽돌을 세워놓고 눈물로 울부짖으며 기도하던 지진 참사 할머니에게 같이 통감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바친다.

“전생의 인연인 듯 남매로 만나 67년의 세월을 함께 했던 은규야….
이제 너 없는 세상에서 가슴 저 깊은 곳에
끓어오르는 비통함과 후회함만 가득 남았다.
매일 초를 켜고 너를 그리워하다가,
오랜 시간 네가 빛과 그림자처럼 나를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너의 사진 보면서 깨달았다.

드러내지 않는 깊은 사랑으로, 누나라기보다는
동생 돌보듯 챙겨주고 도와주었던 은규…
하지만 너 있는 세상에는 내가 함께하지 못함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그곳 세상에서는 더없이 행복하기를
보잘것없는 누나의 이름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아미타불의 무한한 자비와 가피가 너에게 온전히 충만하기를
옴 아비라 훔캄 사바하…

-소설가ㆍ철학박사ㆍ2022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 가작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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