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건 단체건 기념일을 두어 특별히 기린다. 걸맞은 의식을 갖추기도 한다. 의미가 없는 날이 있을까마는 기념일을 두는 것은 세상살이의 지혜이다. 불교에서는 기념일을 재일(齋日)로 이름을 붙여 치른다. 정진을 다짐하고 불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신도들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재일은 축제일이기도 하다. 재일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이다. 축제는 전도(顚倒), 즉 뒤집힘에 그 의미가 있다. 높고 낮음, 길고 짧음, 옳고 그름 등 세속의 가치를 뒤집어 낮은 것이 높아지고, 긴 것과 짧음이 뒤섞여 마침내는 높낮이와 장단, 시비가 해소되는 것이다. 윤회의 반복이 아니라 환멸문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념일은 부처님오신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법정공휴일이 되어 온 시민이 즐기는 날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펼쳐지는 연등회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불교국가마다 고유의 풍습과 어우러져 부처님오신날을 성대하게 치른다. 부처님오신날에 출가재일, 성도재일, 열반재일을 더하면 불교의 4대 명절이 된다. 이날들은 톱니바퀴가 이어져 힘을 전달하듯 서로 맞물려야 그 의미가 확연해지고 확장된다.

근래에는 부처님오신날과 함께 부처님의 깨달음에도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호응을 얻으면서 성도재일과 출가재일, 열반재일을 크게 기념하는 사찰들이 늘어났다. 부처님의 출가와 성도, 열반의 과정 속에 큰 가르침이 담겨 있으니 기려도 크게 기려야 할 날들이다.

잘 아다시피 싯타르타 태자의 출가는 사문유관(四門遊觀), 즉 늙음과 병고와 죽음 그리고 출가수행자의 모습을 목격한 후 삶과 죽음에 대한 큰 의문을 품게 되는 장면을 통해 전해진다. 부귀영화가 보장된 왕자의 자리를 떨쳐버리고 중생에게 빛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인류사에 가장 빛나는 장면 중의 하나가 사문유관이다.

열반재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생에서의 인연을 마친 날이다. 마지막 날에 부처님은 이교도인 수밧다에게 법을 설하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간 후에는 내가 설한 법과 내가 정한 율을 너희들의 스승으로 삼도록 하여라.” 부처님은 육신의 인연을 다 했지만, 법과 율로써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말씀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잘 들어라, 비구들이여! 내 너희들에게 간곡히 이르노라. 모든 형성된 것은 영원하지 않다. 방일하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 정진하라는 마지막 말씀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출가절, 열반절이라고 하는데, ‘재(齋)’를 붙여 출가재일, 열반재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절(節)은 일정한 시점을 그저 가리킨다. 재는 재계, 즉 신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행동을 삼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재일은 계율을 지켜 악을 경계하고 자비를 널리 베푸는 날이다. 하루하루가 그러해야 하겠지만 사람살이가 늘 그럴 수 없으니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출가재일(음력 2.8)과 열반재일(음력 2.15)이 일주일 간격으로 있어, 이 시기를 출가-열반재일 주간으로 정해 특별히 정진하는 사찰이 많아졌다. 양력으로는 2월 말에서 3월로 이어지는 기간이니 봄맞이로도 제격이다. 올해의 출가재일은 양력으로 2월 27일이며, 열반재일은 3월 6일이다. 다가오는 출가-열반재일 주간에는 부처님께서 간곡히 당부하셨던 ‘물러남이 없는 정진’에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를 맞이하며 마음 속에 품었던 원을 다시 새겨본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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