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19-우수

원철 스님

눈이 녹아 비나 물이 된다는 날

‘Japanese Blue’ 명칭 세계화

정보라는 쪽염색 후 홍화염색

“우수에 비가 오면 풍년 든다”

김미순작.
김미순작.

 

비가 내리고 싹이 튼다는 우수(雨水)는 24절기 중 두 번째 절기다. 속담에 ’우수경칩에 대동강 물 풀린다‘고 하는 말이 있다. 우수는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날이니 봄기운이 서리기 시작하는 절기이다. 꽃샘 추위라 하여 매서운 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아무리 춥던 날씨에도 얼음은 녹고 날은 풀린다. 우수에 관한 옛 문헌에 보면 우수에는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물가에 차례로 늘어놓는 습성이 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보였기에 옛사람들은 우수가 지난 뒤의 5일을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 같다고 해 달제어(獺祭魚)라 했다.

무지개염색.
무지개염색.

우수의 월(月)은 인월(寅月) 음력 1월이다. 양력으로는 2월19일이 우수다. 음력 1월이면 봄의 시작이다. 겨울을 밀어내고 봄으로 단장을 하고 싶어도 아직은 겨울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는 시기이다. 돼지(亥) 쥐(子) 소(丑) 해자축월이 겨울이고 북쪽이며 흑색이며 물이다. 그래서 돼지, 쥐, 소는 물에서도 수영을 잘한다. 호랑이의 달 인월 호랑이는 봄이요 동쪽이며 청색이며 나무다. 목(木)의 기운이 강한 인월(寅月) 목(木)에 해당하는 장기는 간과 담으로 간과 담에 좋은 나물로 냉이가 있다.

1월에 냉이를 먹으면 일 년 동안 눈이 밝아진다고 하는 소리가 있듯이 《동의보감》에 보면 “냉이나물로 국을 끓여 먹으면 간을 좋게 하며 눈을 맑게 해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봄의 시작 인월이 되었으니 원대한 목표가 있을 것이고 뭔가 잘될 것 같은 희망에 차 있는 시기 하나 아직 긴 겨울을 헤집고 나왔으니 봄 차림을 하기에는 잘못하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마음은 밖에서 들려오는 꽃소식에 봄 마중 나서고 싶지만 겨울 외투를 벗는 것은 조금 더 기다려 볼 일이다.

물들임.
물들임.

급하면 안되는 시기 인월이다.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마음으로 시작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처음 시작하는 시기이니 마음은 들떠 있는 어린아이 같고 순진무구하기만 하다. 계획한 일이 잘되려면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청춘의 계절 봄의 시작 인월의 희망을 노래해보자.

청색으로 물들일 수 있는 색은 쪽으로 염색한다. 쪽물 들이는 방법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르긴 하여도 쪽으로 내는 색은 청색이다. 일본에서는 쪽으로 물들인 청색을 ‘Japanese Blue’라는 명칭으로 세계화하고 있다. 우리 전통 쪽 염색 역시 전통문화로서 발전해가는 중이다. 청색은 화학염료가 나오면서 쉽게 만들어지는 색이었다면 예전에는 인디고, 쪽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색이었다.

쪽으로만 만드는 청색이 있다면 청색이 노랑을 만나서 나오는 색은 초록이요 연두다. 초록을 만들려면 쪽염색을 한 후에 노랑 색소인 치자, 양파, 괴화, 메리골드, 황련, 연잎, 황백, 등으로 복합염색을 하여 초록을 만든다. 이때 연두를 만들고 싶으면 청색은 약하게 노랑은 진하게 염색을 하면 된다. 연두색과 초록색은 청색의 노랑의 비율에 의해 만들어진다.

보라색을 만들려면 청색염색을 한 후에 홍화 염색을 하면 바로 규합총서에서 말하는 정보라 색이다. 물론 로그우드나 소목, 코치닐, 락 등으로 색을 만들기도 하지만 문헌에서 말하는 가장 아름다운 정보라는 쪽염색을 한 후에 홍화염색을 한 것이다. 짙은 청색 검은빛을 띤 감색(紺色)을 만드는 방법은 쪽을 진하게 물들인 후 갈매나무(참나무과)를 진하게 달여 염색을 하게 되면 어두운 청색을 만들 수 있다.

사염.
사염.

 

심도 깊은 검정색을 만들려면 쪽염색을 하고 탄닌계 염료인 오배자, 도토리, 밤, 감, 신나무 등의 염색을 한 후에 철매염을 하면 된다. 한가지 염료만으로도 내는 검정색이 있지만 그것은 심도 깊은 검은 색이 아니다. 청색을 내는 쪽염색이 염색의 기본중에 기본인 이유가 쪽염색을 빼놓고 하는 염색은 심도 깊은 색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알록달록.

 

나무가 가지에 힘찬 물올리기를 시작할 때, 모든 식물의 에너지들이 위로위로 쭉쭉 뻗어 올라오는 이 시기에 인월에 색을 만들기 좋은 염재는 나무의 줄기와 가지에 가장 많은 색소를 응축하고 있다. 겨우내 땅속 저 깊은 뿌리 속에 저장해두었던 에너지들을 가지와 줄기로 끌어 올려 힘찬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물이 오른 가지와 줄기는 염료의 색소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봄에는 가지와 줄기를 염료로 사용하고 여름에는 광합성 작용이 활발한 나뭇잎이 좋으며 가을에는 열매를 염색하면 색이 좋다. 겨울에는 기운이 뿌리 쪽으로 내려가니 늦가을 뿌리를 채취하여 색을 만든다.

염재.
염재.

 

지금은 염재 역시 채취하기보다는 이미 한약재로도 사용되고 염료로도 사용되는 재료도 인터넷이나 재료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산속에 있는 절에서야 늘 주변에 지천인 풀과 나무들만 가지고도 염색이 가능하기에 특별한 재료 이외에는 쪽염색과 함께 주변 부산물을 이용하여 염색한다.

우리가 음식을 하다보면 천연으로 청색을 내는 음식은 거의 없었다. 물론 화학적 식용색소로 파랗게 물들이는 것을 제외하고 천연의 청색소로 만들어진 음식을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색채심리학에서의 청색은 음식에 대한 식탐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이어트할 때 청색의 사물을 보면 식욕감퇴의 효과가 있다고도 하니 한 번쯤은 참고해볼만 하다. 인월의 색은 이른 새벽의 색이다. 그 시간에 음식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시간대와도 맞아 떨어진다. 새벽 시간대 인월 인시, 아직은 조용한 어둠이 걷히는 시간, 이 때가 명상의 집중력이 최고조로 달할 때이다.

옻나무염색.
옻나무염색.

 

청색은 집중력이 좋아지게 하는 색이다. 스님들 기상 시간은 인시(寅時,3시~5시)이다. 새벽 4시에 새벽예불과 기도 명상을 한다. ‘도량석(道場釋)’은 새벽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의식으로, 목탁과 염불로 잠든 스님들과 삼라만상을 깨우는 새벽 예불의 시작이다. 도량석을 돌며 치는 새벽 목탁소리는 잠든 초목과 풀벌레 등 삼라만상에게 놀라지 말고 일어날 준비를 하라는 의미가 있다. 도량석 목탁소리는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하면서 점점 커져 간다. 이와는 반대로 저녁 목탁소리는 크게 시작해서 아주 작게 잦아든다. 조용히 휴식을 취할 준비를 하라는 거다.

새벽예불에는 다기에 깨끗한 물을 올린다. 저녁예불은 물은 올리지 않고 향만 올린다. 나무는 물이 필요하고 햇빛이 필요하다.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땅도 필요하다. 호랑이는 물에 대하여 거부감이 없으며 수영도 능숙하며 물속에서 물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인월은 음력 1월이요 음력 1월에는 아직도 겨울의 추위가 채 물러나지 않았지만 봄이기에 마음은 벌써 봄꽃을 피워내고 있다. 여기저기 봄 매화 소식에 마음으로는 벌써 봄 마중을 나간다. 우수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많은 생명들이 얼어버린 땅을 뚫고 나오는 파릇파릇 한 새싹들과 언 땅을 녹이고 내려오는 시냇물처럼 웅크리고 있던 추운 겨울 새벽 도량석 청아한 목탁소리가 새벽을 가르며 삼라만상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사)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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