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보 선사, ‘귀향’, ‘야보송’, ‘대그림자’

 

중국 남송시대의 야보도천(冶父道川, 생몰미상)은 임제선사의 6세 법손이다. 야보선사의 당송의 문장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선정의 세계는 그의 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특히 뛰어난 시적 상상력으로 금강경의 내용을 게송으로 답한 것이 주옥같은 그의 《천로금강경》이다. 그런데 언어의 절제와 응축, 비유와 상징으로 깨달음의 미학을 보여주는 선사들은 미혹의 세계에서 살다가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을 ‘귀향’이라고 표현하였다. 야보선사의 ‘고향 길을 밟으니’는 “지금, 여기, 나”라는 절대적 현재에 비추어 ‘참된 자기’를 찾았음을 담아내고 있다.

젊어서부터 돌아다녀 먼 곳까지 익숙하니 自少來來慣遠方
몇 번이나 형악산을 돌고 소상강을 건넜던가. 幾廻衡岳渡瀟湘
어느 날 아침에 고향 길을 밟으니 一朝踏着家鄕路
비로소 객지서 보낸 세월이 길었음을 알았다. 始覺途中日月長

마음의 본래 고향인 진여자성을 깨닫지 못한 삶은 아무리 화려하게 산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생이 심한 객지의 나그네의 삶에 불과하다. 하지만 선사는 지금까지 찾아 헤맨 고향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존재하는 세간으로서의 공간, 즉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자아에서 진정한 고향을 발견함으로써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렀음을 표현하고 있다.

반야지혜를 상징하는 ‘달빛’은 자연현상의 하나로 선사의 마음을 ‘텅 빈 충만’의 세계로 안내하는 길라잡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텅 빈 충만’의 미학은 공과 색 또는 허와 실이라는 이항 대립의 통합을 의미하며, 선이 지향하는 깨침의 미학이다. 다음의 시는 ‘야보송’으로 알려진 선시의 압권이다.

천 길 낚싯줄을 곧게 드리우니 千尺絲綸直下垂
한 물결 일자 많은 물결이네. 一波載動萬波隨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가워 고기는 입질 않고 夜靜水寒魚不食
텅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滿船空載月明歸

이 게송의 원작자는 뱃사공을 하던 선자덕성(船子德誠) 혹은 화정선자(華亭舡子, 생몰미상)이다. 하지만 야보선사가 이 게송을 알리는데 일등공신이었기에 ‘야부송’이라고 불린다. 달빛 머금은 가을강의 금빛 수면 같은 고요한 마음자리에 한 생각이 일자 마치 낚싯줄을 따라 이는 물결처럼 일파만파의 번뇌가 일어났다가, 한 생각을 쉬고 관조하자 안정으로 돌아간다. 물고기는 내가 지향하는 바의 욕심(욕계)이고, 천 길의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은 초월을 통해 해탈로 귀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텅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온다’는 것은 완전한 무욕의 선적 경계[空]에 도달했음을 암시한다. 어부(선승)는 모든 세속인들이 원하는 것을 거부하며 배에 ‘공’(空)을 싣고 돌아오는 깨달은 사람이다. ‘텅 빈 배’는 무욕의 극치이고 ‘밝은 달빛’은 깨달음의 세계이며, 고요한 밤은 선정수행이 극에 달한 경지이다. 온 우주와 합일되는 상즉불리(相卽不離)의 번득이는 깨달음의 선지가 자연을 매개한 서경 속에 함축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선시의 백미이다.

선승은 수연 자재하여 일체의 성색의 사물에 대해 집착이나 걸림이 없다. 그래서 감정과 외계의 대상의 일치를 은유적으로 담아내고, 시적 대상과 자아의 심적 감성이 상호침투 되어 고조된 감정의 울림을 낳는다.

노파의 옷을 빌려 노파의 문에 절한다 借婆杉子拜婆門
예의의 차림은 이것으로 넘친다 禮數周旋已十分
대나무 그림자 뜰을 쓸어도 티끌하나 일지 않고 竹影掃階塵不動
달빛이 물속을 뚫어도 수면에 흔적 하나 없네 月穿潭底水無痕

모두 노파의 옷을 입고 노파에게 절을 한다면 누가 노인이겠는가. 노파의 옷을 입은 사람일까, 절을 받고 있는 사람일까. 이는 곧 옷차림이나 얼굴 생김새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지막 두 행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물속을 뚫어도 수면에 흔적 하나 없다"는 말은 세속에 있으면서도 대나무 그림자처럼 물들지 않고, 세속에 있으면서도 물위에 비친 달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새가 공중을 날아가도 흔적이 없는 것과 같다. 집착없는 경계를 말한다. 따라서 외부의 어떠한 움직임에도 흔들림 없는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이 바로 곧 수행자의 덕목이요 도이다. 야보 선사의 시는 그 상상력이 가히 끝없어서 삼라만상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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