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아 오랜만에 찾아뵈니 어머니가 많이 늙으셨다. 딱히 지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걷는 것조차 힘에 부쳐 하셨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누구나 늙으면 병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는 아픔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자 중에는 아픈 사람을 보고서 도움의 손길 대신 ‘전생의 업보’라며 혀를 차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이다.

《열반경》에 이르길,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님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아니룻다는 눈이 멀었음에도 마음의 눈을 떠서 ‘천안제일’이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정신병을 앓았던 출라판타카는 마음의 병을 치료한 뒤 깨달음을 얻어서 ‘가장 진실한 사람’이라고 불리었다.

부처님은 병자가 있으면 그 병자를 찾아가 위문하셨다. 《잡아함경》의 〈급고독경〉에는 부처님이 위중한 수닷타 장자를 찾아가서 위로한 내용이 실려 있다. 부처님께서 병세를 묻자 수닷타 장자는 “저의 병은 너무 심해 견디기 어려운 지경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위로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평소에 삼보를 믿지 않고 계율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묵숨을 마친 뒤의 일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삼보에 귀의하고 청정한 계율을 성취했고, 재물을 승단에 보시해 큰 공덕을 지었다. 그러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부처님의 위로를 받은 장자는 기쁜 마음에 병중에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일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병고와 죽음은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아셨기에 부처님께서는 병든 재가불자가 있으면 직접 찾아가 설법을 하셨던 것이다.

불교의 진정한 가르침은 아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병상에 염주를 걸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지도론》의 경구처럼 ‘중생이 겪고 있는 고통의 뿌리를 제거하고 마침내 행복의 언덕에 오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일 것이다.

TV를 보고 있으면 여러 구호단체에서 모금을 유도한 광고를 한다. 모금을 유도하는 광고이다 보니 가난의 풍경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상이 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광고를 보고서 ‘빈곤 포르노’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빈곤 포르노 운운하는 사람에게 필자는 “당신의 작은 후원금이 어려움에 처한 지구촌의 이웃에게 내일이라는 크나큰 선물이 될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적어도 연말연초만큼이라도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살펴보도록 하자. 멀리 볼 것도 없다. 가족, 친척, 친구라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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