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의 수가 1530만 명이며, 가구로는 638만에 이른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0년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 결과이다. 3년 전의 조사이니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반려동물의 대부분은 개와 고양이이며, 관련 산업의 규모도 엄청나게 크다.

불교에서 동물의 지위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수행자의 도반이며 때론 외호의 역할을 했다. 나아가 성불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존재이다. 단지 생명을 지녔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것 이상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불교생태학을 연구한 서재영 박사는 불교의 동물관을 주제로 여러 편의 논문을 제출했는데, ‘선사들의 삶을 통해 본 동물의 도덕적 지위’(불교평론 2008년 여름호)에서 인간과 동물의 평등성을 전해주고 있다. 몇 가지 예를 소개하면 이렇다.

신라의 범일 국사는 중국 대륙을 행각하다가 회창의 폐불을 만났다. 난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던 중 기력이 쇠진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동물들이 가져다준 떡과 음식으로 기운을 차렸다고 한다. 뱀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동물인데, 《경덕전등록》에 등장하는 뱀은 법(法)을 이해하는 동물로 그려진다. 가비마라 존자가 수행하러 가는 길에 큰 뱀이 존자의 몸을 칭칭 감았는데, 이에 존자가 삼귀의를 일러주자 뱀이 물러갔다.

이 같은 내용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선문헌 편집자들이 이런 내용을 수록한 의도 중 하나는 생명의 평등함을 드러내려는 것이었다. 인간 외 존재의 생명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화적 사실’로 이해할 수 있다.

작고한 불교학자 안옥선은 ‘인간과 동물간 무경계적 인식과 실천’에서 “전존재의 유무와 생멸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연기의 관점에서 보면 뭇존재들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면서 “동물도 우리처럼 고통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마치 사람을 대하듯이 그들을 대하라”고 강조했다.

불교의 동물관이 이러한데도 우리는 아직도 동물을 인간의 필요에 응하는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식량으로서 고기, 오락 또는 취미, 의학 실험, 산업의 원료 등을 제공하는 존재로 부리고 있다. 서구의 기독교적·기계론적 사고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동물관은 생명 존중, 생태계의 회복과 유지를 위한 활동에 무진장한 빛을 비춰주고 있다.

지인들과 함께 책 읽기 모임을 하는데 최근 읽은 책이 《반종차별주의》였다. 프랑스 작가 에므리크 카롱의 저서인데, 나에게 놀라움과 함께 혼란스러움을 던져주었다. 인간 외 동물에 대한 반동물적인 행위를 종차별주의로 규정하고, 인간의 윤리가 동물에게도 확대해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불교의 동물관을 접했던 터라 저자의 주장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규정성이 매우 강해 저어됐으며, 주의자가 되자는 주장에는 흠칫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세상에는 오래도록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어느 때에 이르러 그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들이 있다. 노예제도는 천 년이 넘도록 이어지다 무너졌다. 여성들이 참정권을 확보한 것도 반세기 전의 일이며, 아직도 적지 않은 나라에서는 ‘보호’라는 틀 속에 여성들을 가두고 있다. 그러나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은 반인간적인 억압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이들의 논리에 다름 아니었다. 인간 외 동물에 대한 인간의 반동물적인 행태도 인간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며,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오만함의 산물이다. 이 또한 어느 땐가는 무너질 것이다.

아직도 인간은 굶주림과 추위, 자연재해,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 전쟁으로 자국민을 내모는 폭압적인 권력, 돈을 향한 무한경쟁에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동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생명평등론과 반종차별주의는 세상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한가한 소리라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 세상이 좋아져 먼 훗날에서야 할 얘기를 앞당겨 꺼내는 소영웅주의 또는 유토피아 타령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을 살면서도 내일을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며, 이는 다른 종이 할 수 없는 인간의 장점이다. 그것이 인간됨이기도 하다. 동물에게까지 그들의 고유성을 지켜주는 마음이 생긴다면, 사람들의 삶이 그만큼 따뜻해지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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