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17-소한

24절기 중에 스물세 번째 절기

‘작은 추위’이지만 겨울의 절정

축월은 오상으로 신(信)에 해당

‘심우도’ 사찰 법당 벽화로 등장

음력(陰曆)으로 2022년 12월 15일 양력(陽曆)으로 2023년 1월 6일은 24절기 중 스물세 번째 절기로 작은 추위라는 의미를 지닌 소한(小寒)이다. 절기의 의미상으로는 대한(大寒)이 가장 추워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지리적 차이로 인해 소한(小寒)이 1년 중 가장 춥다고 한다. 속담도 꽤 많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 대한이 소한이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추운 소한은 있어도 추운 대한은 없다. 소한이 대한 잡아먹는다. 소한이 대한의 집에 몸 녹이러 간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는 등이 있다. 작은 추위라는 소한이지만 추운 겨울의 절정이다.

박민호 작.
박민호 작.

 

음력 섣달(12월)은 축월(丑月)로, 겨울의 막바지에 동지가 지나면서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다. 대지는 얼어붙은 동토(凍土) 의 땅이면서 에너지가 충만한 달이다. 토의 계절 축월은 오상(五常)으로 신(信)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서울 도성(都城)의 사방에 세운 성문은 흥인문(興仁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과 더불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 지(智)에 해당하는 문인 숙청문(肅淸門) 혹은 숙정문(肅靖門)이 있다. 토(土)의 자리 신(信)의 자리는 널리 보(普), 믿을 신(信), 문설주 각(閣)자를 쓰는 보신각(普信閣)이다. 보신각은 ‘믿음을 넓게 한다’는 의미를 담은 전각이다. 종이 달린 누각이라고 해서 종각(鐘閣)이라고도 부른다. 역 앞에 보신각(종각)이 있어 지금의 전철 1호선 종각역의 이름이 되었다.

색으로 이야기할 때 축토(丑土)의 색은 황색이다. 황색은 색을 만들기 가장 쉬우면서도 다양하게 표현되는 색이다. 황색은 간색으로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한번 바뀔 때 황색이 나온다. 3월은 진월(辰月)의 황색이며, 6월은 미월(未月), 9월은 술월(戌月), 12월은 축월(丑月)의 황색이다. 황색이라고 해서 같은 황색은 아니다. 계절마다 각기 달라지는 황색이다.

이경호 작.
이경호 작.

 

봄의 토, 여름의 토, 가을의 토, 겨울의 토, 땅도 사람도 계절에 따라 기질이 다르다. 겨울의 마지막 달 축월(丑月)은 이제 봄으로 가기 전 단계이다. 변화의 시기인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봄을 맞을 준비의 단계가 된 것이다. 에너지 가득 머금었으니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할 준비는 다된 것이다. 박차고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서두르지 말며 때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축월(丑月) 12월은 방위로는 북동간방(北東艮方)이며, 색으로는 황색(黃色)이며, 동물로는 소(丑)가 된다. 축시(丑時)는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가 되니 생각만 해도 춥다. 겨울의 새벽, 어둡고 한기가 느껴지는 춥고 컴컴한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둡고 추운 겨울 지기(地氣)가 열리는 축월(丑月)의 축시(丑時)는 한기(寒氣)가 극심하다.

소(丑)는 어금니가 없다. 대신 입술이 발달해 풀을 먹을 때 소의 입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발톱은 두 개로 나뉘어 있어 음(陰)에 속한다. 소의 상징성은 인내력이 강하고 신의가 있으며 정직하고 순진하다. 끈기 있게 꾸준히 묵묵히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성실하게 전진한다. 순하게 보이는 모습과 달리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강하고 뚝심이 세어 묵묵하게 목표에 도달하고 만다. 추진력이 강하고 ‘다 모여라’ 하듯이 주위 사람을 끌어당기는 면이 있다. 커다란 소 눈망울처럼 겁이 많아 보이며 우직하고 보수적인 모습도 보인다.

이덕은 작.
이덕은 작.

 

인류 역사의 기록에서는 의식을 거행할 때의 희생물로 소가 처음 등장하며, 이후에는 사람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소로서 중요하게 여겼다. 소는 사람과 함께해온 온순한 동물이지만 한번 화가 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들이받는다. 정월 씨름, 팔월 소싸움이라는 말이 있듯이 소싸움은 소를 먹이는 ‘머슴들’의 놀이로서 남자들이 하는 놀이였다. 소를 중요한 생산수단으로 여겼던 전통사회에서 소싸움은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놀이로서 대구, 경북 청도, 경남 의령·진주·김해·창원, 전북 정읍 등에서 연중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소의 상징과 의미는 신화 속 상상동물을 이야기하는 책에 많이 나온다. 소는 도가(道家)에서는 유유자적을, 유가(儒家)에서는 의(義)를 상징하지만, 불가에서는 ‘인간의 본래 자리’를 의미한다.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비유한 ‘심우도’는 사찰에 가면 법당 벽화로 많이 등장한다. 이는 선사들이 이러한 소를 수행의 채찍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고려 때의 보조국사 지눌은 호를 목우자(牧牛子)라 했다. ‘소를 기르는 사람’ 즉 참다운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만해 한용운 선사도 만년에 서울의 자택을 심우장(尋牛莊)이라 했다. 이는 ‘불성을 찾기에 전념하는 곳’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이영자 작.
이영자 작.

 

심우도(尋牛圖) 또는 십우도(十牛圖)는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보여준다. 동자와 소에 비유한 수행 10단계를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한 선종불교회화이다. 인간 누구나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 이 불성(佛性)을 소에 비유한 것이다.

1. 심우(尋牛) = 본성을 찿기 위한 소를 찿는 단계.

2. 견적(見跡) =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단계.

3. 견우(見牛) = 발자국을 따라가다 소를 발견.

4. 득우(得牛) = 소를 보았으니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소는 언제 도망칠지 모른다.

5. 목우(牧牛) = 소를 길들인다. 삼독의 때를 벗겨낸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 길들여진 소등에 타고 무심히 돌아간다. 구멍 없는 피리를 분다.

7. 망우존인(忘牛存人) = 집에 돌아와 보니 소는 온데간데 없고 자신만 남았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 소가 사라진 뒤 나 자신도 잊어야 한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자연 그대로의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참된 지혜.

10. 입전수수(入廛垂手) = 중생제도 부처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

최정혜 작.
최정혜 작.

 

심우도는 언설과 문자가 지니고 있는 형식과 틀에 집착하거나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불교교리를 담고 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로 부처님이 가르친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 사람 마음의 실상을 찾아가는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부처가 되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선(禪)의 종지(宗旨)를 담고 있다. 순서대로 수행 단계를 밟아 서서히 높은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계묘(癸卯)는 육십간지 중 40번째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 2023년이 왔다.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소리 겨울 숲 사이로 퍼져 나간다.

조각보.
조각보.

 

(사)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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