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받은
삼백예순다섯 개의
해와 달과 별과 바람
“그 위에 뭘 더
바라고 살겠는가”

 

계묘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달력의 첫 장 앞에 섰지만, 치솟는 희망과 용기보다는 올 한해는 또 어떻게 넘어갈까 하는 막막함이 더 앞선다. 이건 비단,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리라. 지난 한해 우리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날들을 건너왔다. 코로나19의 기세는 여전하고 일촉즉발의 남북관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세계정세와 경제 불안정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오늘도 가슴 졸이는 삶을 살고 있다. 그 마음에 먼저 ‘새해 인사’를 전한다.

“글쎄, 해님과 달님을 삼백예순다섯 개나/ 공짜로 받았지 뭡니까// 그 위에 수없이 많은 별빛과 새소리와 구름과/ 그리고/ 꽃과 물소리와 바람과 풀벌레 소리들을/ 덤으로 받았지 뭡니까// 이제, 또다시 삼백예순다섯 개의/ 새로운 해님과 달님을 공짜로 받을 차례입니다// 그 위에 얼마나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덤으로// 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잘 살면 되는 일입니다/ 그 위에 더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나태주 시인의 <새해 인사> 전문

탐ㆍ진ㆍ치로 덕지덕지 끼었던 마음의 때가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그렇게 많은 해와 탈과 별빛과 새소리와 구름과 꽃과 바람과 풀벌레 소리를 덤으로, 그것도 공짜로 받아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으니, 이 위에 무엇을 더 바라고 살 것인가.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기독교와 천주교와 원불교 등을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덤(공짜)으로 준 세상,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고 , 싸우지 않고, 어리석게 굴지 않으며 그대로 쓰다가 있는 그대로 처음 온 곳으로 돌아가자는 것 아닌가.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온 인류가 좋은 행복한 삶을 살자는 것이 우리 인생 목표 아닌가. 그런데, 아직 새 달력의 첫 장도 넘기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정치 경제 사회는 몇 년이나 지난 듯하고, 국방과 국제정서 세계경제는 지난해의 걱정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를 알 듯, 구상 시인은 필자를 향해 나지막이 읊어주고 계셨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 내가 새로워져서 인사를 하면/ 이웃도 새로워진 얼굴을 하고/ 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 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 지난날의 쓰라림과 괴로움은/ 오늘의 괴로움과 쓰라림이 아니요/ 내일도 기쁨과 슬픔이 수놓겠지만 그것은 생활의 율조(律調)일 뿐이다 …하략…” -구상 시인의 <새해> 부분

2023년 계묘년 달력의 첫 장을 다시 본다. 벌써 중순이 넘어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진정으로 “새해를 새해로 맞이했는가.” 그리하여 “새로운 내가” 되어 “새로운 거리”를 “새로운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는가. 덤으로 받은 삼백예순다섯 개의 해와 달과 별빛을 담을 마음 그릇을 준비했는가.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내가 되어 삼백예순다섯 개의 해와 달과 별빛을 새로 받아 담을 새 마음을 준비했으면 좋겠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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