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 처능(白谷處能), ‘산문을 나서며’, ‘동희 선생에게 올리는 시’ 등

 

백곡 처능(1619-1680)은 8,150여자에 이르는 장문의 상소문 〈간폐석교소〉를 올려 불교탄압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시정을 간청함으로써 강력한 ‘호법의지’를 보여주었다.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불교 교단을 지켜내려 했던 백곡의 응결된 ‘호법의지’가 다음의 시에서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步步出山門 걷고 또 걸어서 산문을 나오니
鳥啼花落後 새 울고 꽃은 이미 떨어졌네.
烟沙去路迷 모래사장에 안개 끼니 가는 길이 헷갈려서
獨立千峯雨 비 내리는 수천 봉우리에 홀로 서 있네.

산문을 나오니 꽃잎 지고 새가 울고 있다. 그런데 세상을 돌아보니 임금과 관리는 불교를 탄압하고 있다. 부처를 찾는 백성들의 소리는 외면할 수 없다. 때문에 백곡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외로이 법등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그것은 골짝의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이고, 비 내리는 수많은 봉우리 속에 홀로 서 있는 모습에서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끊임없는 각성이 수행의 중요한 덕목이다. 그럼에도 많은 스님들이 계율을 지키거나 수행을 게을리 하고 편을 갈라 비방하며 권력다툼을 하였다. 이에 백곡은 수행자들에게 정분에 얽혀 어지러운 세상사에 휘둘리지 말고, 항상 ‘세치 혀’의 놀림을 조심하며 뜬 구름 같은 영욕을 멀리하여 살아갈 것을 강조하였다.

人情曲曲重重似羊腸 인정은 고불고불 겹겹이라 양의 창자와 같고
世事紛紛擾擾如狂風 세상일은 어지럽고 시끄러워 미친바람과 같네.
毁譽是非只棹三寸舌 비방과 칭찬, 시비는 세 치의 혀를 휘두르는 것뿐이요
悲歡榮辱聊付一夢場 슬픔과 기쁨, 영화와 욕됨은 한바탕 꿈에 불과하다.

‘세치 혀’야 말로 인생을 좌우하는 보검인 동시에 흉기이기도 함을 역설하는 백곡은 현실에 집착하여 생기는 모든 슬픔과 기쁨, 영욕은 한바탕 꿈에 불과한 것임을 설파한다. 이는 곧 성성적적하며 분별심을 버리고 마음으로 보고 듣게 되면 맑고 텅 빈 본래면목이 드러나게 될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선조의 부마 동회 신익성은 백곡에게 영향이 가장 컸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동회 선생에게 삼가 올리는 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十里湖沙兩岸村 십 리 호수 모래밭 양쪽의 언덕 마을
偶携黃卷到柴門 우연히 황권을 들고 사립문에 도착했네.
相逢說盡無生話 서로 만나 무생화에 대해 끝없이 얘기하니
燕子東風日欲昏 제비는 봄바람 속으로 날아가고 저녁놀 지려하네.

황권[불경]을 들고 호수 모래 밭 언덕 마을에 살고 있는 동회 선생을 뵈러 간 백곡은 무생화에 대한 담론을 해지는 줄을 모르고 제비가 귀가하는 시간까지 지속했다. 무생화는 생성됨도 없고 소멸됨도 없는 ‘열반’에 대한 이야기다. 후일 백곡은 동회 선생의 옛집을 지나다 책상 가득 놓여 있는 시서를 보고 한 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선사에게 자연은 단지 대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는 이상이며 그 자신의 해탈의 경계이다. 백곡의 이러한 수행과 깨달음의 과정은 유유히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보고 선심을 다지는 모습에서 잘 묘출되고 있다.

浮雲本無跡  뜬구름은 본래 흔적이 없으니
我與雲相依  나는 구름과 더불어 서로 의지하네.
手中桃竹枝  손에 있는 것은 대나무 지팡이
身上薜蘿衣  몸에는 칡넝쿨 옷을 걸치고 있을 뿐

모두가 날아가는 구름을 쫓고 있지만 뜬 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다. 산중에서 무심하게 살아가는 백곡은 구름과 서로 의지하여 지내고 있다. 이러한 무욕의 삶은 손에 들고 소요하는 대나무 지팡이와 몸에 걸친 ‘벽라의’로 한결 잘 표상되고 있다. ‘벽라의’는 덩굴식물인 여라의 잎과 줄기로 만든 옷이라는 뜻으로, 흔히 은자의 행색을 의미한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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