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동안 알뜰하게 아끼고 절약하여 모은 적금을 찾아 내 집을 마련한다는 벅찬 꿈도 있겠고, 결혼이나 승진을 꿈꾸기도 한다. 어린아이라면 한 살 더 먹어 상급생이 된다는 기대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령기에 이르러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직장을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적잖은 부담감을 갖게 한다.

그런가 하면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고독감이 스멀스멀하거나 몸이 성치 않아 자주 병원을 들락거려야 하는 시간들이 늘어간다는 중압감으로 마음이 편치 않을 사람도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란 말로 해석하면 간단하겠지만, 누구도 그 말에 쉽게 수긍하려 들지 않은 게 인간사다. 나만은 병 없이 백 년을 살 것처럼 말이다.

불가에선 이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했다. 생사일여(生死一如)라고도 했다. 자연은 어떤 것들이나 모두 한결같이 인연 따라 오가는 생멸(生滅)의 진리이건만 모두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꿈꾼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느 것 하나 귀하고 천하고 좋고 나쁨이 없이 자연의 순환 속에 응집(凝集)과 소멸(消滅)을 반복한다. 그렇게 모두 평등하게 세상을 이루고 있건만, 인간만은 이런 근본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욕심을 내어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어떤 절대자의 힘에 의해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무시이래(無始以來) 생주이멸(生住異滅) 이어져 간다는 현상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인위적 변괴(變怪)와 파괴(破壞)로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현상을 늘 목도한다. 자연의 순화를 역행하는 삶이겠다. 지금도 진행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또한 치열한 경쟁과 과도한 발전지향적 계발이 지구 환경의 파괴와 오염을 초래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초에는 예상을 초월한 기라성 폭우가 포항을 휩쓸고 지나갔다. 포항의 원동력이나 다름없는 포스코(posco)가 폭우로 인한 손상으로 아직까지 가동을 멈추고 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재해였다. 이태원 참사가 뒤를 이었다. 그 진상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구의 환경도 환경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도 이렇게 예상치 않는 돌연변이성 사건들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로 보면 문화가 극도로 향상된다고 그저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도 더 큰 자연재해와 인적 참사가 더 많이 예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무분별한 개발과 물질적 고급화, 향락을 향해 정신없이 질주하고 있다. 인성(人性)이나 인간적 최후의 보루(堡壘)인 인정(人情)은 날이 갈수록 메말라가고 있는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회통(會通)하고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오로지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고 우리끼리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집단 이기적 삶의 형태가 날로 가증되어가고 있다. 그런 혼미한 상태에서 극도의 부와 향락을 끝없이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네 삶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돌아보면, 자연의 이상 현상은 지구촌 처처에서 발생하고 있고, 인간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포악해져 가고 있다. 세계 각 나라마다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고, 핵이라는 무시무시한 협박 카드가 우리들 삶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다. 언제 어느 때 우리 삶의 공간에 미사일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하기에도 섬뜩하다. 그런 처참한 참상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우리는 역력히 보고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 속에 가슴을 조이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 자기주장만 앞세워 아귀다툼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붓다는 무명(無明)이란 말로 인간의 모순을 지적하셨다. 무명은 무지(無知)다 아무리 문명이 발전하고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하다라도 인간은 무지의 블랙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고도 하였다.

인간들은 죽어서 호화로운 천당이나 극락을 꿈꾸고 있다. 혹 그런 세상이 있을지라도 당장 삼계화택을 벗어나지 못하고서 어찌 그런 세상을 꿈꿀 수 있겠는가.

다행히 이러한 형국 속에서도 불법(佛法)의 인연을 만나 극락을 염원하지만 무엇 하나 놓지 못하고 마귀의 주술에 이끌리듯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어떻게 살아왔으며 오늘 이 시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황벽 희운선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불시일번한철골 쟁득매화박비향) 뼈를 깍는 추위를 만나지 않으면 매화의 지극한 향기를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

올해는 우리 모두 향기 가득한 꽃을 피워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포항 청정심원 주지 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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