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마지막 절기인 동지(冬至)는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다음날부터는 낮이 더 길어진다. 예부터 동지를 작은 설로 여겨 축하했다. 절에서는 이날 신도들에게 달력을 나누어준다. 팥죽을 쑤어 나누어 먹는다. 팥죽은 액운을 쫓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작은 설을 축하하며 나누는 음식이다. 많은 사찰에서는 거리에 나가 시민들에게 팥죽을 나누는 행사도 벌인다. 호호 불어 팥죽을 먹으면 추위가 싹 가신다. 이 따뜻함으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힘을 얻기도 하니, 팥죽 나누기는 서로에게 온기를 전하는 따사로운 풍속이다.

동지 즈음의 일출 시각은 오전 7시쯤, 해 지는 시각은 오후 5시쯤이다. 일찍 어둠이 내린다. 밤의 길이가 14시간쯤 된다. 신체활동 시간이 줄어드니 몸이 움츠러든다. 어서 봄이 왔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소한(小寒), 대한(大寒)의 추위를 견뎌내야 한다.

얼마 전 TV에서 집 없이 사는 미국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날의 주인공은 72세의 여성이었는데, 개조한 화물차를 집 삼아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살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남편의 폭력과 병고가 원인이기도 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집을 잃은 것이 발단이었다. 집값이 오르자 너도나도 대출해 집을 샀는데, 집값이 폭락하고 금리가 오르면서 담보로 잡힌 집을 금융기관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노숙인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녀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노숙은 가난의 극한 상태에 이른 이들의 어쩔 수 없는 처지이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월 800달러의 연금수당이 그녀의 수입의 전부다. 이 돈으로는 월세를 얻기도 힘들다. 한때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삶을 즐긴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과 저녁노을의 황홀함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놀랐던 사실은 미국의 노숙인이 100만 명이 넘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에서 5년마다 노숙인 실태 조사를 하는데, 2021년 조사 결과 노숙인은 14000여 명 정도로 파악된다. 노숙인은 상당한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거리 노숙인),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시설 노숙인), 만화방, 사우나, PC방, 쪽방 생활자 등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노숙인이 되는 경위는 질병 및 장애, 이혼 및 가족 해체, 실직, 사업 실패, 알코올 중독, 신용 불량 혹은 파산, 임대료 연체로 인한 주거 상실, 주위 사람들의 도움 부재, 배우자 사망, 교도소 출소, 복지 서비스 등 정보 부재, 사회복지시설 퇴소 등이다. 노숙은 뜻하지 않게 닥쳐오는 재난이다.

노숙인을 돕는 단체 중의 하나인 ‘홈리스행동’은 노숙인 인권 지킴이, 반(反)빈곤 연대활동을 벌인다. 야학을 열어 그들의 권리의식을 높이기도 한다. 홈리스행동은 “홈리스 상태가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기인하며, 신자유주의의 금융세계화가 확대될수록 홈리스 문제는 점차 심화될 것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홈리스행동’은 홈리스 문제를 게으름, 무능 등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인식에 반대하며, 노숙은 물론 극한의 주거 빈곤 상태에 처한 홈리스 대중들의 조직된 힘을 통해 홈리스 상태를 철폐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단체를 소개하고 있다.

겨울은 어둠의 시간이다. 깜깜한 터널 속에 있는 느낌이다. 어디쯤 지나고 있을까. 이제야 겨울에 들어온 것인데, 어서 터널을 빠져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동지를 지났으니 절반은 넘긴 것이겠지.

겨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더 춥다. 노숙인은 물론 노점으로 생계를 꾸리는 이들에겐 가혹한 시기이다. 부처님께서는 “베풂은 널리 평등하게 골고루 하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아야만 베푸는 마음속에서 나를 만나 구제받는 인연을 맺으리라”고 하셨다. 여러 사찰과 종단에서 어려운 이들을 위한 나눔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신문의 지면을 데운다. 고마운 일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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