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허득통, 운악산에서, 송당(松堂), 산중미, 열반송

 

함허득통(1376~1433)은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수학했지만 21세 때 동료의 죽음을 보고 삶의 허망함을 깨닫고, 관악산 의상암에서 삭발염의 하였다. 다음해 양주 회암사에서 무학에게 가르침을 받아 지공-나옹-무학의 선맥을 이었다. 특히 《현정론》을 통해서 배불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불교의 정체성을 변호하고 지켜냈던 함허는 운악산 현등사에 주석하면서 자연의 이법 속에서 ‘본래면목’의 깊은 뜻을 감응하곤 했다.

운악산 자락이 보듬은 현등사
바위에 떨어지는 높고 낮은 물소리
천길 만길 멀리에서 흘러오는 물이로되
바다에 이르도록 조금도 멈추지 않네

雲嶽山帶懸燈寺 落石飛泉上下聲
出自千尋與万丈 滄溟未到不曾停
 

산골 물은 시내와 강을 이루고 결국에는 넓고 푸른 바다에 이른다. 이러한 물의 속성을 깊이 생각하면서 함허는 부단한 수행정진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함허는 추운 겨울날 소나무 우거진 별당에서 푸른 소나무의 가상을 통해 인욕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올곧은 수행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삼동의 눈 속에 홀로 푸른 저 소나무들
솔 집 주인 마음은 더욱 정결하네
고요하고 한가로운 곳, 맑은 향은 피어오르고
추위를 견딘 나뭇가지 위로 밝은 달을 맞네

森森獨翠三冬雪 堂上主人心愈潔
膈寂閑淸香一爐 耐寒枝上邀明月

삼동의 눈 속에서도 푸름을 지키는 소나무 가지 위의 밝은 달을 맞는 것은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은 선사의 심경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걸림이 없고 무심한 삶의 관조의 세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산중에 사는 ‘텅 빈 충만’의 선열은 다음의 시에서 담박하게 그려지고 있다.

산 깊고 골도 깊어 찾아오는 사람 없고
왼 종일 고요하여 세상인연 끊어졌네
낮이면 무심히 산봉우리에 핀 구름보고
밤이면 부질없이 중천에 뜬 달을 보네
화로에 차 달이는 연기 향기로우며
누각 위 옥전 같은 연기 부드럽다
인간 세상 시끄러운 일 꿈꾸지 않고
다만 선열 즐기며 앉아 세월 보낸다

山深谷密無人到 盡日寥寥絶不緣
晝則閑看雲出峀 夜來空見月當天
爐間馥郁茶烟氣 堂上氤氳玉篆烟
不夢人間喧擾事 但將禪悅坐經年

숭유억불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함허가 선열의 오롯한 시간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산중생활 가운데 한 잔의 ‘차’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사와 동행이 되어주는 것은 구름과 달, 차인데, 이는 곧 선사의 마음을 의탁한 시적 장치이다. 그런데 함허는 1433년 4월, 희양산문 봉암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그 열반송은 마음이 텅 빈 삶 자체가 바로 우주와 함께하는 것을 알게 한다.

텅 비고 고요해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신령스런 그 빛 환하여 온 누리를 비추네
다시는 몸과 마음이 생사를 받을 일 없으니
오고 감을 반복해도 걸림이 없네
죽음에 이르러 눈을 뜨니 온 누리가 뚜렷하고
없는 가운데 길이 있으니 곧 서방극락이네

湛然空寂本無一物 神靈光赫洞徹十方
更無身心受彼生死 去來往復也無罣碍
臨行擧目十方碧落 無中有路西方極樂

허공을 머금고[涵虛] 탕탕한 기개로 살아온 함허는 죽음에 이르러 서방의 극락세계는 다름 아닌 ‘없는 가운데 길이 있는(無中有路)’ 그런 곳이라 했다. 텅 비고 고요해 본래 한 물건도 없는 본성을 깨치게 되면 윤회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생사(生死)를 받는 일고, 아무런 걸림 없이 이 세상을 오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원상’은 허공과 같은 마음의 본질을 말한다. 함허는 ‘일원상’에 대한 ‘텅 빔’의 시적 미학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