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 선생님,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이제 생멸(生滅)이 없어진 곳에서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누리실 터이니 얼마나 평안하십니까?

몇 년 전 제가 출간한 장편소설을 보내자 선생님은 “무엇을 어떻게 가리킬 것인가?”라는 화두와 같은 말씀을 우편엽서에 적어 보내주셨습니다. 소설쓰기도 수행과 다르지 않아서 직지인심(直指人心)할 수 있어야 함을 일깨워주신 것일 테지요. 우편엽서를 받고서 저는 책장에 꽂혀 있는 선생님의 장편소설과 작품집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생님은 《길》의 군말(저자의 말)에서 “《길》과 《만다라》와 《집》은 결국 한 고리로 이어지니, ‘그 무엇’인가를 찾아 ‘길’을 떠나 신새벽의 산길을 올라갔던 한 순결한 영혼이 ‘만다라’의 숲속을 헤매던 끝에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왔다지만 문제는 남는다. 진흙창의 똥바다 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일이 더욱 수승(殊勝)한 공덕(功德)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통스러운 것이다. 연꽃은 멀고 수렁은 더욱 깊어만 가는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화두(話頭)가 있으니, 왜 사는가? 그리고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고 밝혔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왜 사는가? 그리고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평생의 화두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작품 속 주인공인 영복처럼 질곡의 역사를 한 몸에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좌익사상을 가진 아버지가 6.25 전쟁 직전 예비검속에 걸려서 어디론지 끌려가서는 처형당했기 때문입니다. ‘붉은 씨앗’으로 태어나 ‘삼불(三不)의 덫’인 연좌제를 온몸으로 안고 살아야 했던 선생님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애오라지 출가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성불을 해서, 내 마음속에 있다는 부처를 내 것으로 해서, 우선 어머니를 제도(濟度)하고 누나를 제도하고, 그리고 구만리장천을 중음신(中陰身)으로 떠돌고 계실 아버지의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고 나아가 무명예토(無明穢土)를 헤매고 있는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천도하겠다”는 비원(悲願)을 가졌습니다.

선생님은 좌도 없고 우도 없는, 핍박하는 사람도 없고 핍박받는 사람도 없는 세상을 꿈꾸면서 입산했습니다. 하지만 출가 후 선생님이 깨달은 것은 깨달음이 구현되어야 하는 곳은 정토(淨土)가 아닌 예토(穢土), 피안(彼岸)이 아닌 차안(此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의든 타의든 출세간(出世間) 너머 출출세간(出出世間)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은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소설이라는 문자 안의 세계와 선(禪)이라는 문자 밖의 세계의 경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임종 소식을 듣고서 책장에서 《만다라》를 꺼내서 밑줄 친 곳을 다시 읽었습니다.

“순간, 나는 불더미 속으로부터 어떤 물체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한 마리의 조그만 새였다. 몸뚱이는 새의 그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머리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기이한 인두조(人頭鳥)는 불꽃 위에 앉았다. …(중략)…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나래를 펄럭이며, 시간을 가르고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을 향하여,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불길은 이제 맹렬한 속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한 칸 암자는 그대로 한 송이의 만개(滿開)한 꽃송이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토만다라(淨土曼茶羅)였다.”

선생님은 가고 없으나, 선생님이 남긴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토만다라(淨土曼茶羅)의 문학세계는 영원의 시간 속에 있을 것입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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