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족암’, ‘자재로움’, ‘달빛’

 

시와 술과 거문고를 너무 좋아하여 ‘삼혹호(三酷好)’ 선생으로 불렸던 이규보(1168~1241)는 평생을 ‘시마(詩魔)’에 붙들려 살았다. 과거에 합격한 후 벼슬을 제수 받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 산사는 그에게 세상의 번다함과 현실의 시비분별을 떠난, 마음의 여유와 탈속한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공간으로 놓이게 된다.

족암은 푸른 바위 아래 우뚝 기대어 섰고 足庵高寄碧巖根
스님은 향로에 향을 사르고 밤이면 문 닫네 銀葉燒香夜閉門
연꽃도 필요 없는데 공연히 물시계가 필요하랴 不用蓮花空作漏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눕는 것이 일과라네 飢飡困臥是朝昏

이규보는 영수좌 이인로가 주석하는 족암(足庵)을 방문하고 득도한 선승의 내면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족암은 속세와 떨어진 한적한 물리적인 공간인 동시에 화자가 속세를 벗어나 살아가는 정신적 경지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영수좌가 하는 일은 은향로에 향을 사루는 일과 해지면 문을 닫고,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쉬는 일이다. 탈속적인 삶을 사는 영수좌가 고결함과 불성을 상징하는 연꽃에 대한 집착까지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세인들이 재는 물시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규보의 선시에서 읽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코드는 ‘자재로움’이다. 부질없는 욕망은 물론 도를 이루겠다는 집착마저 버리고 걸림 없이 사는 모습은 달관의 경지에 이른 도인의 마음과 같은 경지이다.

고목나무 옆 한적한 방장실 方丈蕭然古樹邊
감실엔 등불이 빛나고 향로에는 연기이네 一龕燈火一爐烟
노승의 일상사 물어볼 것 있으랴 老僧日用何須問
객이 오면 청담 나누고 객이 가면 조는 것을 客至淸談客去眠

그 절의 최고 어른스님이 기거하는 방장실에 들렀을 때 객의 눈에 들어온 것은 등잔 하나와 향로 하나뿐이었다. 이 순간 화자는 숱한 번뇌 망상도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는다. 텅 빈 마음의 여유는 텅 빈 그 자체로서 번뇌로 꽉 차 있는 세속인의 마음을 비우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객의 오고 감에 따라 다담을 나누거나 오수를 즐기는 노승의 일상사는 ‘자재함,’ 바로 그것이다.

“향기로운 차는 참다운 도의 맛”이고 “한 잔의 차는 바로 참선의 시작”이라고 했던 이규보는 진여의 상징인 달빛에서 공(空)을 간파해내는 탁월한 감수성과 깨달음의 절묘한 융합을 멋지게 형상화 하고 있다.

산사의 스님 달빛을 탐내어 山僧貪月色
한 항아리 가득 물과 함께 길어 갔네 幷汲一甁中
절에 도착하면 응당 깨달으리라 到寺方應覺
항아리 비우면 달빛 또한 비게 되는 걸 甁傾月亦空

우물에 비친 달빛이라는 허상에 주목하여 불교의 핵심인 공과 연기의 문제를 형상화 하고 있는 압권의 시이다. 산승이 우물에 비친 달빛을 진상으로 오인하고 물병에 물과 함께 병속에 담아 가지만, 암자에 이르러 물병의 물을 비우면 그 달도 함께 텅 비어 공(空)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달빛이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연물인 달빛도 탐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병통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수행자가 마음 밖에서 불성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이미 내재된 불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