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⑫ –상강

서리 내리는 가을 마지막 절기
가을의 꽃 국화는 선비의 표상
황구, 백구…술월의 색과 연결
어른 수염염색 도토리 열매로

산사에 물들다
산사에 물들다

단풍이 절정에 달하며 가을 국화도 한창인 시기가 상강(霜降)이다. 서리가 내린다는 뜻으로 가을의 마지막 절기다. 이제 가을이 정점을 지나 늦가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도리어 근심이 되는 것은 노포(老圃)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향해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

조선 중기의 문신 권문해가 집필한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의 글로 늦가을의 애잔한 풍경을 전해준다.

소풍.
소풍.

상강 전후가 되면 추수가 거의 다 끝나가고 동물들은 겨울잠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벼는 상강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한다. 벼가 서리를 맞으면 벼이삭이 부러져 수확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서리 내리기 전에 끝내야 하는 것이다. 주인 몰래 훔쳐 먹는 서리가 계절마다 달랐는데 여름에는 참외, 수박서리, 구시월에는 감서리, 동지섣달에는 닭서리가 유행했다. 시절마다 달랐던 서리가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 아이들 이야기책 속에나 나오지 싶다.

일교차도 크고 기온도 내려가는 환절기이다. 기온이 내려가는 상강(霜降)에는 때때로 얼음이 얼기도 하므로, 농가에서는 가을걷이와 함께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한 해 김치 맛은 상강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상강에 내린 서리맞은 배추와 무는 수분이 많아져 입에서 씹어먹는 식감이 아삭하니 좋다고 해서 생겨난 속담이다.

국화는 9~11월 사이에 피는 꽃으로, 수많은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작품을 남겼다. 오상고절(傲霜孤節)로 불리는 국화는 추위에 노지에서 서리맞으며 피는 꽃이다. 그래서 더욱 애틋한 마음에 인고(忍苦)의 상징으로 은인자중(隱忍自重)하는 선비의 신중함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세상이 변해도 국화는 남아 있다’라고 했을 정도로 국화 사랑이 유명하다. 그는 “삼경은 황폐해졌건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그대로 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고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읊었다. 국화는 도연명으로 인해 은인자중하는 삶을 사는 선비의 표상이 되었다.

가을의 마무리를 하면서 겨울로 가기 전의 술월(戌月) 가을 토의 기운이다. 환절기는 변화가 많은 절기로서 쾌청하고 맑은 날씨이지만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서 일교차가 크므로 감기에 조심해야 하는 절기이다. 술월(戌月) 음력 9월 방위로는 서북쪽이며 가을이 마무리되고 안으로 거두어 들이는 계절이다. 술(戌)이라는 것은 만물이 모두 시들어 떨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술(戌)이라고 한다. 깊은 가을의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지고 석양의 노을도 저물어 가고 추수가 끝난 해저문 들판은 쓸쓸하다. 겨울을 나기 위해 꼭꼭 가다듬고 엮어 창고에 저장하고 갈무리 해두는 가을날의 쓸쓸함은 인생의 중후반부에 들어선 중년의 모습과도 같다.

술(戌)은 개를 상징한다. 개는 야행성으로 술시(戌時: 19시~21시)부터 활동을 하는데 예전에는 도둑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민간신앙에서는 개가 귀신이나 사귀(邪鬼)를 쫒기도 하는 영물로 나오기도 한다. 개는 사람과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동물로 인내심이 많으며 충직하고 잘 순응하므로 요즘은 반려동물로 많이 키우고 있다. 예전엔 밖에 놓아 기르는 개는 잘 짖고 떠들며 별 실속 없이 돌아다녔으나, 요즘은 개도 안으로 들어와 사람과 함께 살고 있으니, 개팔자 상팔자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집에서 개처럼 웅크리고 때로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짖어 대기만 하면 상팔자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개는 책임감이 강하고 낙천적인 성격이 특징이다. 9월 술월(戌月)의 상징성 개를 황구, 백구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을 보면 술월의 색과 연결되기도 한다.

물들어간다.
물들어간다.

연해자평에서는 술(戌)을 멸(滅)로 보았다. 술월(戌月)을 만물이 결실을 이룬 계절로 마무리 하고 저장하는 시기로 보았다. 술월(戌月)의 열매는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 창고에 저장되고, 떨어지는 낙엽과 쭉정이는 거름으로 만들어지고, 땔감은 불태워져서 사라진다. 그래서 술(戌)은 멸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서북간의 색으로는 황색과 회색이 복합된 색으로서 어두운 황갈색 정도가 되겠다. 황갈색을 만들려면 가을에 떨어진 열매인 도토리, 밤, 상수리, 연밥 등을 이용하여 염색을 한다. 떨어진 열매를 모아 두었다 물에 담가 우려서 염색을 하는데 옛날에 어른들 수염이 하얀 것을 검게 물들이기 위해 도토리 열매를 우려서 염색하였다는 것을 보면 수염은 신체의 일부분이며 단백질 섬유이기도 하다. 머리 염색법과 같은데 요즈음 염모제를 넣어 만든 화학적 염색법과는 다른 천연 모발 수염 염색인 것이다. 이때 검게 하는 역할은 철장액을 만들어 사용했다. 약으로도 사용하는 철장액이다. 화학이 아닌 것이다.

하얀 말티즈 강아지를 생쪽 염색해보았는데 청색보다는 옥색이 나왔다. 강아지 몸에서 나는 열 때문에 낮은 온도에서 해야 하는 생쪽 염색이기에 색 변화가 약간 생긴다. 곱슬곱슬 누리끼리한 푸들 강아지 염색을 도토리로 해보았을 때 진한 갈색으로 물이 잘 들었다. 강아지 체온의 변화는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 이때 매염제로는 철장액을 살짝 첨가하여 색을 보아가며 농담을 조절한다. 개에게도 전혀 해롭지 않은 건강에 좋은 염색이었던 것이다. 천연염색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에게 이로운 좋은 염색법이니 색을 찾아가는 일은 생활 속 염색으로 자리 잡아 재미로 물들여 보면서 색채학 심리학 공부도 하면 좋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시방(十方)은 동, 서, 남, 북 사방과 동남, 동북, 서남, 서북의 사유에다 상, 하를 합하여 열 가지의 방향을 나타낸 말이다. 또 삼세는 과거세, 현재세, 미래세를 이르는 말이다. 시방에 부처님이 계시어 그곳에서 중생들을 교화하시는데 사찰에 모신 부처님의 모습을 보면 거의가 황금색이다. 황금색은 사방을 관장하는 색으로 부처님 역시도 황금가사를 걸치시고 두루 살피시어 중생들을 교화하고 계시는 것이다.

한지염색.
한지염색.

서북방의 원지광명당왕보살(願智光明幢王菩薩)게송(偈頌)

若能善觀察 菩提無盡海 보리의 끝없는 바다

則得離癡念 決定受持法 어리석은 생각 여의고 결정코 법을 받으리.

若得決定心 則能修妙行 결정한 마음 얻기만 하면 묘한 행 능히 닦아서

禪寂自思慮 永斷諸疑惑고요한 경계 생각하고 모든 의혹 아주 끊나니

其心不疲倦 亦復無懈怠 그 마음 피로하지 않고 게으른 생각도 없이(중략)

已獲菩提智 復愍諸群生 보리의 지혜 이미 얻었고 모든 중생들 가엾이 여겨

光明照世間 度脫一切眾 밝은 빛으로 세간에 비추어 모든 무리를 건져 내나니

《화엄경》의 입법계품(立法偈品)에 나오는 서북방(西北方)원지광명당왕보살(願智光明幢王菩薩)게송의 일부분으로서 보살들이 덕을 찬탄하는 게송이다. 불경의 정수 《화엄경》 하면 떠오르는 선재동자 53 선지식을 찿아 다니며 보현행원을 통해 해탈법계로 들어가는 선재동자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모두 떨구어나간 가을날 텅 빈 들녘의 빈자리, 그 자리에 《화엄경》 약찬게가 울려 퍼진다.

(사)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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