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중학법 73~75조

효능 스님.
효능 스님.

중학법의 마지막 세 개 조항은 대소변과 연관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이런 사소한 행위에 관한 것까지 계율로 정하셨나 싶기도 하지만 대소변을 보는 자세나 장소 등이 비구의 위의와 관련된 사항이고 인도의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재가자의 눈살을 찌푸리게하는 행위는 당연히 금해야 하기에 당연히 이런 계율을 제정하셨다고 생각한다.

먼저 제73조의 조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무병으로 서서 대변 혹은 소변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배워야 한다.”

필자는 2014년경 남인도 뱅갈루루에서 수개월을 산 적이 있었는데 길을 가다 보면 가끔 치마형태의 인도 남성 의상인 룽기를 입은 중년 혹은 노년의 남자들이 하수도나 담벽을 향해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대 인도인들의 생활 습관이 현대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지만 바지를 입은 사람들은 그런 자세로 볼일을 보지는 않는다. 주로 아란야에서 살았던 비구들이 유행을 하면서 급할 때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없었던 당시를 상상해보면 저렇게 앉아서 룽기로 가리고 소변을 보는 것이 오히려 덜 민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음은 중학법 제74조의 조문이다.

“나는 무병인데 생초 위에 대변 혹은 소변, 침을 뱉어서는 안 된다고 배워야 한다.”

고대 인도인들은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여겼다. 또한 우기 4개월 정도를 제외하고는 비가 내리는 일이 없어서 초목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풀 한 포기도 소중하게 여긴 것 같다. 그렇게 어렵게 생명을 싹틔운 생초에 소변을 보는 것은 풀을 죽이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침을 함부로 뱉지 말라는 이유는 맨발로 생활하던 당시의 관습으로 미루어볼 때 내가 뱉은 침을 누군가가 밟을 수도 있기에 비위생적인 행동으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소변 보는 자세나 장소는 비구 위의와 관련

필자는 출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사스님이 주지로 계셨던-은사스님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오셨다- 동두천 광덕사에서 6년 정도를 살았다. 불행히도 내가 머물렀던 방들은 화장실까지의 거리가 왕복 100미터는 되었는데 그때는 학부를 다닐 때라 범어, 빨리어 수업이 있는 전날은 거의 밤샘하다시피 하였다. 그래서 새벽에 소변이 마려우면 먼 화장실까지 가는 것이 귀찮아 그냥 적당하게 숲을 향해서 용무를 봤는데 그 행동이 계율에 어긋나는 행동이었고 애꿎은 피해를 본 초목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중학법의 마지막 제75조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무병으로 수중에 대변 혹은 소변, 침을 뱉어서는 안 된다고 배워야 한다.”

물속에서 대소변을 보면 당연히 안 될 일이기도 하지만 인도는 8개월 동안의 건기 동안 물이 귀하기 때문에 물을 오염시키는 행위를 금했을 것이다.

대소변에 관한 중학법을 보면 누구나 찔리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그런 행위가 계율을 범하는 것임을 알기에 그나마 참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자위하곤 했다.

이상으로 중학법의 75개 조문을 간략하게 주제별로 정리를 해보았다. 다음 연재는 승가의 분쟁을 없애는 7멸쟁법(滅諍法)을 다루어 보기로 한다.

동방불교대학교 교수

스리랑카 국립 켈라니야대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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