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교와 관련해 관심을 끌 만한 설문조사 결과 하나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미국의 복음주의 신자들 사이에 이단적 견해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설문조사는 미국의 복음주의 사역단체에서 수행했는데, 이 단체들은 2년마다 미국인의 신앙의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 결과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으며(53%), 성령은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60%),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57%)으로 나타났다. 이런 생각은 복음주의 교리와 어긋나는 것이다.[국민일보, 미국인 53% “성경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 2022. 9. 27.]

이 설문조사는 결과를 보면서 필 주커먼((Phil Zuckerman)이 펴낸 <신 없는 사회>가 떠올랐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필은 2005~2006년 덴마크와 스웨덴에 머물며 그곳 사람들의 종교의식을 조사했다. 종교 전통이 강한 나라인데도 종교적 열정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조사의 계기였다. 그 조사 결과를 책으로 펴냈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루터교를 국교로 채택한 나라다. 수입의 1%를 종교세로 내며(스웨덴은 2002년에 교회세 폐지), 유아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으며, 결혼식은 대부분 교회에서 한다. 그만큼 종교적 전통이 강한 곳이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신을 믿는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정도다. 신학적인 내용은 기본적인 것조차 믿지 않는다. 두 나라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비율은 10% 정도에 머문다. 그런데도 인생의 중요 의례를 교회에서 치르는 것은 전통이기 때문에 또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괜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은 이러한 현상을 ‘문화적 종교’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필은 문화적 종교를 “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적 전통에 일체감을 지닌 사람들이 종교 안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진심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확연히 종교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현상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흐름일 뿐이다. 유대인과 덴마크, 스웨덴, 태국의 불교도, 세르비아, 미국 유타주의 모르몬교도에서 문화적 종교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인다.

종교는 무엇인가? 이 물음의 해답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중세 유럽에서 이 질문의 답은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당시의 종교는 권력이나 법 위에 군림하는 가치였으며, 일상생활을 철저히 규율했다.

불교사에서도 신앙의 귀의 대상이 시대에 따라 바뀌어왔다. 미륵은 미래의 부처님으로 석가모니불 이후 중생들을 구제한다. 흉년과 질병으로 힘겨웠던 조선 후기에는 민란과 역모 사건이 자주 발생했으며, 새로운 이상사회의 실현을 약속하는 미륵하생신앙이 유행하였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서 신분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기존의 지배적인 사상과 질서가 더 이상 맥을 추지 못함을 의미한다. 백성들의 먹고사는 일은 팍팍했다. 권세 있는 자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짰다. 민란이 터졌고 바람을 탄 들불처럼 무서운 기세로 번져갔다. 당취는 민란 속으로 들어갔다. 이 또한 미륵신앙에 뿌리가 닿아 있다.

서두에 언급한 조사 결과에 대해 연구원들은 “지난 8년간 나타난 경향 중 하나는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특히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개인적 견해나 문화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성경 속 가르침을 거부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는 종교가 지배적인 가치체계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적 가치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혼돈의 와중이다. 세계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기후위기, 전쟁과 신냉전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불평등과 극한 경쟁이 단단한 콘크리트처럼 구조화되었으며, 심리적으로 집단적 불안증에 시달리는 삶으로 내몰렸다.

이러한 때에 종교는 무엇인가. 불교는 무엇인가. 미국 복음주의 사례이지만, 종교가 선택적 가치가 되는 상황에서 종교의 위의를 갖추지 못하면 사이비가 활개를 친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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