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성우, ‘콧구멍없는 소’, ‘임종게’

 

‘길 없는 길’을 살아있는 눈[活眼]으로 살다 간 경허성우(1846~1912)는 풍전등화 같던 한국불교의 선맥을 되살린 선불교의 새벽별이며 중흥조이다. 9세에 모친을 따라 청계사 계허에게 출가하였으나 계허가 환속하자 동학사 만화 강백 밑에서 경학을 익혔다. 대강백이 된 경허는 스승 계허를 찾아 나섰다. 도중에 어느 마을에서 전염병이 창궐한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고 동학사로 돌아와 강원을 철폐한 후, 영운선사의 ‘나귀 일이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도래한다’[驢事未去 馬事到來]는 화두를 들고 칼을 갈아 턱 밑에 대놓고서 수마를 물리치며 치열하게 정진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바깥에서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라는 한 사미의 질문에 활연대오하였다.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忽聞人語無鼻孔
문득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頓覺三千是我家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六月燕岩山下路
들사람 일 없이 태평가를 부르네 野人無事太平歌

‘콧구멍 없는 소’. 그 소는 코뚜레를 뚫을 수 없어 고삐를 묶을 수 없고, 이리저리 끌려 다닐 일도 없다. 이는 분별심이 없는 본래면목을 본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내외명철(內外明徹)이라고 하는데, 선사는 이 경지를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집’은 본래심을 뜻한다. 사실, 깨닫고 보니 상대적 경계에 걸리거나 집착이 없고, 일 없는 들사람들이 태평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무애의 경지에 이른 환희심의 ‘오도송’이다.

경허는 영호남지방 일대를 다니며 선풍을 크게 떨쳤다. 서산 개심사와 부석사 등에서 수행 교화하였고, 1894년 범어사의 조실이 되었으며, 또한 1899년 해인사 퇴설당에서 경전간행불사와 수선사(修禪寺) 불사의 법주가 되기도 하였다. 경허의 선정몰입의 기쁨은 해인사 퇴설당 주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봄, 가을 내내 참 좋은 날 많더니 春秋多佳日
마땅한 약속 지켜 풍년이 들었구나 義理爲豊年
달을 읽는 물고기 소리 고요히 들으며 靜聽魚讀月
하늘을 얘기하는 새와 웃으며 마주하네 笑對鳥談天

선 수행자의 지극히 고요한 정신세계가 경물과 조화를 이루어 잘 표현되어 있다. 물고기, 달, 새, 구름 등을 자연물을 두루 원용하여 확 트인 선열(禪悅)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산자락이 속진(俗塵)을 막아주고, 계곡 물소리는 바깥소리를 잠재우며, 보름밤이면 둥근달이 계곡물에 부서지는 소리를 냈을 산당(山堂)에서 선정에 드는 선사는 ‘달을 읽는 물고기 소리를 고요히’ 들으며 하늘을 이야기하는 새와 웃으며 마주할 수 있다. 가히 성성적적한 선사의 선심의 시심화의 압권이다.

경허는 누구에게도 집착하는 법이 없었다. 말년 홀연히 삼수갑산에 머리를 기르고 숨어든 그를 애제자 수월이 찾아왔을 때도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는 말 한마디로 돌려보낸 경허였다. 그런 경허는 삼수갑산의 도하동에서 어린 학동을 가르치며 살다가 1912년 4월 25일 새벽, 원적에 들었다.

마음 달 홀로 둥글어 心月孤圓
그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光呑萬像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光境俱忘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復是何物

경허의 ‘임종게’이다. 선가에서 달[月]은 깨침의 상징으로,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의 달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 달[心月]이다. 이 마음 달 하나만 홀로 둥글게 떠 있고, 그 빛이 모든 삼라만상들을 삼켜버렸다. 이는 삼라만상을 마음이 남김없이 수용하여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본래부터 밝고 신령하여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 할 수도 없고 모양 지을 수 없는 ‘한 물건’이 무엇인가? 영원한 화두이다. 삼라만상을 삼킨 외로운 ‘마음 달’의 주인공 경허는 수월, 혜월, 만공(월면)이란 세 달[三月]이 한반도를 환하게 비치게 함으로써 한국 선불교의 불꽃을 되살렸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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