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허남경 장인의 삶과 차선2

제주·담양 비롯 국내 수요 증가
“값 올려라” 요청에 “아직 아냐”
기술 전수·인재 양성 체계 필요
“선생님” 호칭에 일할 용기 얻어

필자(왼쪽)와 인사를 나누는 허남경 장인.
필자(왼쪽)와 인사를 나누는 허남경 장인.

 

허남경 장인은 한번 맥이 끊어진 차선의 제조 기법을 여하튼 다시 되살린 것으로 차선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했던 기술이 언젠가부터 사라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문화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사라진 기술을 일본은 우리나라에 이어 근래 중국에도 기술을 다시 전해준 것이라고 한다. 여하튼 차선은 번성했던 차문화 특히 말차문화의 상징적인 도구이니 일본의 독점기술이라고 할 수는 없는 부분이 있다.

차도구 뿐만 아니라 차 역시 그 형태는 중국과 한국과 일본이 서로 유사했다고 할 수 있다. 한약방의 한약업사들이 말하는 차는 기호품을 넘어 약품이기도 하다. 단순히 마시는 음료일 뿐만 아니라 약용으로도 사용되었다. 부처님은 물론 조상께 마치는 훌륭한 공양물로도 올려진 귀한 물질문화이다. 아울러 우리 선불교에서는 중요한 의례 즉 다례제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선객(禪客) 즉 참선(參禪)하는 스님들의 정신을 맑게 하는 수행에 없어서는 안되는 도반(道伴)이기도 했다.

차선 제작에 몰두하는 허남경 장인.
차선 제작에 몰두하는 허남경 장인.

물론 이런 점은 역사적으로도 한중일 삼국 모두의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따라서 다도(茶道)의 세계는 한중일 삼국의 차문화가 조금씩 다르더라도 그 공통 분모는 비슷하다는 추론을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다도를 통해서 얻는 경지와 참선을 통해서 얻는 경지가 결국 둘이 아닌 하나 즉 같은 것이라고 하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 역시 삼국의 교집합임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차노유’로 불리는 일본 다도(茶道)에서 차를 다루고 대접하는 과정은 일본의 독특한 의례와 절차이지만 그 정신과 도구는 삼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여하튼 이런 다도의 주요도구라고 할 수 있는 차선에 대한 전통적인 제조기술은 이제 다시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 제조의 모든 과정을 익힌 허남경 장인과 그 부인, 그리고 아들이 있는 한 우리나라도 차선 제조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된다. 현대산업사회가 되어 이젠 도구들도 전통적인 도구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계선반회사를 통해서 다양한 공정에 기계를 투입한다.

1970년대에 일본 역시 그렇다. 물론 일부 공정은 기계를 사용하는 것보다 사람의 손이 더욱 정교하기 때문에 기계를 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즉 전체 공정 가운데 대부분은 아직도 손과 도구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기술의 원천은 ‘전통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정확한 기술적인 고증이 필요하다. 허남경 장인은 이런 차선 제조기술이 우리나라에서 그 명맥이 다시 끊어지지 않게 다음 세대에게 이어가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남경 장인이 만든 차선은 대부분 일본을 수출했지만 최근에는 국내 수요도 많아졌다고 한다. 제주도와 담양 등에서 대량으로 사간다고 한다. 다만, 일부 악덕 도매상에서 너무나 가격을 싸게 해서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었던 비화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근래는 도매상들이 서로 가격이 너무 싸지 않아도 되니 이제 좀 올리라는 조언도 할 정도이니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럼 이제 가격을 올리면 되지 않냐는 질문에 아직은 버틸만하니 바로 가격을 올릴 생각은 없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다. 장삿꾼이 아닌 장인다운 모습에 ‘차인’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차선 제작에 몰두하는 허남경 장인.
차선 제작에 몰두하는 허남경 장인.

 

일본에 수출한 차선(일본어로는 챠센) 가운데는 다양한 품질과 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 일부는 10배 이상의 가격으로 일본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잘 몰랐었는데, 언젠가 비싼 가격을 주고 사왔다는 우리나라 차인이 사용하던 차선이 자신이 만든 것임을 알고 놀란 적도 있었다. 자신이 만든 차선의 포장도 바뀌고 차선 본체에 일본 유명 장인의 도장도 찍혀 있었다고 한다. 그 기술력을 인정받은 증거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한 면도 있다.

허남경 장인은 자신이 작품으로 만들면 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40년 동안 몇 번이

차선 제작에 몰두하는 허남경 장인.
차선 제작에 몰두하는 허남경 장인.

나 작품을 주문받아 만들어서 공급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이 되면 장인의 손을 떠나면 고가에 팔리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런 수요도 많지 않아서 굳이 욕심을 낼 이유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명장이나 인간문화재가 되면 좋겠다는 꿈도 요즘은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술도 전수하고 국내에 더 좋은 제품도 만들어 내보낼 수 있는 인재를 많이 양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 좋겠다고 전한다.

40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도 짧다면 짧은 기간이라고 한다. 그 긴 시간 동안 오직 차선을 만드는 한길만을 걸어왔다. 후회는 없다. 가족도 건강하게 같이 살고 있고 아들도 훌륭하게 자란 것이 모든 차선의 공덕이라고 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기술자에게 월급도 더 줘야 하는데 아직은 조금 미진한 면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기술자들의 이직이 많아 마음 고생도 많은 게 걱정이라면 큰 걱정이라고 한다.

허남경 장인에게 차선은 ‘기쁨’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많이 배우지 못한 하청 공장 기술자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차계의 높은 분들이 거꾸로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줘서 너무 기쁘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도 평생 이 일을 할 용기가 난다고 한다. 참 소박한 기쁨이다. 시맥 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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