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착’, 이 말에는 어둡고 습한 기운이 서려 있다. 사전에서는 ‘사물들이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결합하여 있음’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유착은 친교, 교제, 교류와는 거리가 먼 부정적인 정서와 분위기가 배어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 통일교와 자민당 사이의 유착 논란이 일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총격살해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정치인을 살해한 사건은 일본은 물론 많은 나라에 충격이었다.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랐다.

아베를 살해한 용의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통일교에 거액을 헌금해 가정 파탄에 이르러 이 종교단체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용의자는 애초에 통일교의 최고 간부를 살해할 생각이었지만 접근이 어려워 살해 대상을 아베로 바꿨다. 아베가 통일교의 일본 확산에 기여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용의자의 진술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서는 아베가 통일교 행사에 보낸 축하 영상이 퍼졌다.

일본의 여러 언론에서는 통일교와 아베․자민당의 관계를 앞다퉈 다루고 있다. 선거 유세에 통일교 신자들이 동원됐으며, 심지어는 특정 지역으로 전입해 표를 몰아주기도 했다는 증언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통일교의 깊은 타락이다. 종교의 길에서 멀어져도 한참 멀어진 행태이다. 민의를 왜곡해 민주주의 제도를 흔든 것이어서 그 심각성이 크다.

일본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87%가 자민당과 통일교의 관계에 문제가 있으며, 78%가 둘 사이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답했다. 일본사회는 종교단체가 저지른 무차별적 테러를 경험한 적이 있다. 1995년에 있었던 이른바 옴진리교 테러 사건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여론은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자 위기감을 느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각료를 대거 교체하면서 반전을 꾀했다. 각료회의에서는 "정부가 의심을 가지는 일이 없도록 과거에 대한 설명을 확실히 하고, 지금부터 이런 단체와의 관계를 끊도록 철저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관계 단절을 촉구했다.

일본의 현역 의원 중 112명이 통일교와 연루됐으며, 그중 98명이 자민당 소속이라는 언론의 보도도 이어졌다. 유착의 폭이 얼마나 넓었는지를 알려주는 숫자다. 그러나 관계를 끊지 않겠다고 말하는 정치인도 있다. 아베 전 총리의 동생인 기시 노부오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그는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자원봉사자 모집 등에서 도움을 받은 건 있다고 생각한다”며 통일교의 지원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관계 단절에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자발적인 지지와 후원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싶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진리의 세계를 지향하지만, 정치는 세상의 권력을 욕망한다. 정치는 화합보다는 투쟁과 쟁취의 장이다. 권력을 쥐는 과정에서의 비인간화조차 용인된다. 그러므로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는 겹쳐질 수 없는 거리가 있어야 한다. 종교와 정치의 유착은 건강하지 않다.

생물학에서는 ‘유착’을 “서로 분리되어 있어야 할 생물체의 조직면이 섬유소나 섬유 조직 따위와 연결되어 붙어 버리는 일. 대개 염증의 치료 과정이 잘못되어 생긴다”고 풀이한다. 병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정치와 종교의 유착은 생물학의 설명법이 더 적확하다.

일부 종교는 배타적인 종교지형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해 정치적 유력자의 지원을 기대한다. 정치인은 종교의 물적, 인적 지원에 기댄다. 유착을 통해 커가기를 바라는 종교와 정치의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연스런 과정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고질병이 되고 만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인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구조화된다. 마침내는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생각조차 둔감해진다. 유착의 달달함에 넘어가 도덕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종교는 때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부정적 역할을 하는데, 정치와의 유착이 한 예이다.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