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허남경 장인의 삶과 차선1

80년대에 차선 하청공장 번성
국내 단가 비싸 생활유지 애로
아내와 아들에 제작과정 전수
고급작품 제작 주문도 들어와

허남경 장인이 차선을 만드는 모습.
허남경 장인이 차선을 만드는 모습.

차시(茶匙)와 차선(茶筅)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 다도 가운데 자주 등장한다. 멋있게 차려입은 차인들이 말차의 차 가루를 차시 또는 차칙이라고 하는 대나무 등으로 만든 숟가락으로 떠서 다완에 옮긴다. 은이나 상아 등으로 만들기도 하고 대나무 외에도 화류나 대추나무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루녹차를 떠서 옮기는 것이 차선인데 이게 오죽(烏竹)으로 만들면 알 수 없는 기품이 서린다.

차 가루가 들어간 다완에 뜨거운 물을 붓고 차와 물이 잘 섞이도록 젓는 데에 사용하는 것이 차선이다. 한쪽의 대나무를 60본∼120본으로 쪼개어 만든 것이 차선인데, 계란 거품을 내는 기구 즉 휘핑기와 같은 용도로 사용된다. 녹차가루를 잘 저어서 잘게 거품을 내는데 이게 보통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에는 초승달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도 있고, 물기는 하나도 없이 오직 거품만으로 해야 맛이 있다는 의견 등 최고의 경지에 대한 논검(論劒)이 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니 누가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얘기도 다 훌륭하고 대단한 면이 있다.

허남경 장인이 차선을 만드는 모습.
허남경 장인이 차선을 만드는 모습.

역사 문헌상에 처음 나온 것은 중국 송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태조 왕건의 뇌원차와의 관련성도 제기되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가마쿠라시대(1192~1333)에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그런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일본 나라현의 이코마시를 비롯하여 교토, 나고야에서도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에서 차구를 파는 가게나 백화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게 은근히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에 이르는 고가에 팔리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고가의 차선 가운데 일부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수출한 것이다. 일본의 한 차선 공장의 나카다 대표가 한국에 기술을 전수해서 만들어 전량 수입해 간 것이다. 1980년대에는 차선이 우리나라에서 매우 잘 팔려서 공장도 번성하고 하청공장도 많았다. 강원도 횡성과 주문진, 경기도 하남, 충청북도의 제천 등에 적지 않은 장인들이 살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파는 차선의 단가가 너무 싸서 차선을 만드는 것만으로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오히려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것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 수입이 더 좋아져 적지 않은 기술자들이 공장에서 떠나갔다고 허남경 장인은 전한다.

차선 만들기에 몰입하는 허남경 장인.
차선 만들기에 몰입하는 허남경 장인.

지금도 제천에서 차선을 만들고 있는 허 대표는 어려서부터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그래서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나보다. 다들 다른 일을 하러 공장을 떠나가는데 장인은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묵묵하게 차선을 만들며 남들보다 좋은 제품을 빠르게 만드는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1990년대에는 성실하게 단 하나의 불량품도 섞이지 않게 완벽하게 만드는 모습에 감동한 일본인 나카다 사장과 직접 거래를 하게 되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생계도 유지하게 되고 보다 많은 주문을 받아 생산과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하청 일을 할 수 있는 기술자가 많은 제천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같이 일하던 아내 최동자씨는 물론 근래 8년간 아들인 허원영씨에게도 차선 제작과정을 완벽하게 전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제천에 ‘챠센’이라는 카페를 개업하여 지금은 2호점을 낼 정도로 사업수완도 좋아 현재는 허남경 부부만이 몇몇 기술자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40년간 혼자서 아등바등 공장을 운영해 나가는 남편에게 한두 마디 위로는 못해주고 늘 잔소리만 해서 미안하다는 최동자씨는 정말 앞으로 힘내 더 잘되어 많은 사람을 도우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전한다.

강원도 횡성 출신인 허남경 장인은 차선을 만들던 화성기업과 동성기업을 거쳐 노량진에서 처음으로 하청 공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2013년 제천으로 오기 전까지는 고생도 많았지만 언젠가부터 타산이 안맞은 탓에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현직 기술자가 되어 버렸다. 차선의 전 과정을 익힌 마스터로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장인이 되어 버린 허 대표는 졸지에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어, 국내 차선 제조를 독점하게 되었다고 감회를 전한다.

허남경 장인이 차선을 만드는 모습.
허남경 장인이 차선을 만드는 모습.

허 대표는 차선이라는 기술을 1970년대에 일본인이 전해준 것이지만, 원래는 신라 선덕여왕대 이래 우리의 차문화의 전통이 넘어간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차선을 하게 되면서 점차 자부심이 생기고 다도의 세계를 알게 되어 기쁘다는 허 대표는 함께 일해온 아내에게 늘 고마움을 표한다. 차선을 택해서 지금까지 힘들게 살았지만 앞으로는 ‘고진감래’라고 좋은 일만 남았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거래처에서 오히려 가격을 올리라고 하고 때로는 고급품 즉 작품을 따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자주 들어올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시맥 전법사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